어머니가 낳아주신 후로 나는 60년 넘게 길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원하는 대학에 가려고 재수를 선택했고, 전공을 선택했다. 군대 간 친구들의 휴가를 환영해 주다가 뒤늦은 입대를 선택했다. 고시 대신 유명한 대기업 입사를 선택했고, 자존심 상하는 걸 못 참아 미련 없이 퇴사를 선택했다. 둘째 형님과 셋째 형수의 중매를 사양하고 후배가 소개해 준 여인을 선택했다. 공공기관 입사를 선택했고 북경 주재 근무를 선택했다. 배출권거래제를 깊이 이해하려고 금융공학을 공부하기로 했고, 에너지안보 전략을 세우고 싶어 국제정치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선택의 연속 속에서 살아왔다고 믿었다. 나는 다윗이 되고 싶었다. 솔로몬도 되고 싶었다. 어느 날에는 요셉이 되고 싶었고 다음 날에는 작은 예수가 되고 싶었다. 사방에 적들만 있다고 느낄 때는 이사야가 되고 싶었고, 방성대곡하며 회개한 후에는 예레미야의 심정이 이해된다고 느꼈다. 신명기를 읽는 동안에는 모세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세가 죽은 후에는 가나안 성지로 민족을 이끌어갈 여호수아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어떤 사람도 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해서 걸었다고 생각하던 그 길은 하나님이 손잡고 이끌어 주시거나 등 뒤에서 떠밀 듯이 하신 것이라는 걸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내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입문코스에서부터 단계별로 조금씩 훈련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이제 나는 조금 다르게 기도하려 한다.

주님, 내가 자신 있는 길보다 내가 필요한 곳으로 보내소서. 내가 계획한 길이 아니라 주님이 준비하신 길을 알아보게 하소서. 괜히 고집부리다가 사서 고생하지 않게 하소서. 내가 혼자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 담대해져서 주님 손을 놓지 않게 하소서. 앞이 보이지 않아 두려울 때, 공포에 휩싸여 주님의 손 뿌리치지 않게 하소서.
주님이 나를 깊은 산 속으로 투입하실 때 내 다리에 힘이 없고 숨이 가빠서 못 가는 일이 없게 하소서. 끝없는 바다에 항행케 하실 때에 맘이 조려서 못 가는 일 없도록 대담하게 하소서. 고공에서 뛰어내리게 하실 때도 오금이 저려 낙하를 거부하지 않게 하소서. 지위 높은 사람들을 만날 때 그들의 권위를 존중하되 하나님보다 크다고 느끼지 않게 하소서. 고난의 여정을 걷느라 지쳐서 초라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그렇게 성큼 다가서게 하소서.
요셉이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이다”(창 50:20)라고 고백한 것처럼, 나도 나를 괴롭게 한 이들에게 한을 품지 않고 용서하며 살게 하소서. 그 기억이 나를 묶는 사슬이 아니라, 나를 풀어주는 증거가 되게 하소서.
모세가 금송아지를 섬겨 죄를 범한 백성을 위해 “주께서 그들의 죄를 사하지 아니하시려거든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 32:32)라고 기도한 것처럼 나도 뭇 백성을 위해 기도하게 하소서. 나 하나의 안위가 아니라 공동체의 생명을 먼저 생각하게 하소서.
예레미야가 군중에게 외면당하는 고독과 조롱 속에서도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렘 20:7)라고 고백하며 주님의 인도를 거절하지 않은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되게 하여 주소서. 사람의 평가가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다윗이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삼하 7:18)라고 외치며 자신의 꿈을 하나님의 더 큰 계획 앞에 내려놓은 것처럼 나도 그렇게 되게 하여 주소서.
내가 세운 계획보다 주님의 뜻을 앞세우게 하소서.
솔로몬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위로는 하늘에 아래로는 땅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왕상 8:23)라고 한 것처럼 나도 주님의 유일하심과 위대하심을 고백하게 하소서.
예수님께서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마 6:10)라고 가르치신 것처럼,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통스러운 십자가 처형을 앞두고서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눅 22:42)라고 기도하신 것처럼, 나도 하나님의 캐스팅에 군말 없이 응하게 하여 주소서.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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