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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알고리즘이 빚어낸 거울 앞에 서서"

  오후의 햇살이 창가를 비출 때, 가끔 조용히 앉아 스마트폰을 켜봅니다. 화면 가득 펼쳐진 유튜브의 추천 영상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묘한 서늘함이 느껴지곤 합니다. 그곳에는 제가 최근에 무엇을 갈망했는지, 어떤 불안에 잠을 설쳤는지, 그리고 내면의 깊은 곳에서 무엇을 탐닉했는지가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알고리즘’은 현대판 ‘거울’과 같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이 차가운 수식이, 역설적으로 나의 가장 뜨겁고도 은밀한 정체성을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 OTT 콘텐츠를 보고 유명한 기독교 유튜버의 영상을 구독하며, 스스로를 꽤 괜찮은 신앙의 궤도 위에 있다고 위안하곤 합니다. 하지만 알고리즘은 냉정합니다. 내가 정말로 하나님을 구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나의 신학적 정당성을 확인해 줄 자극적인 콘텐츠만을 쇼핑하고 있는지 알고리즘은 그 수치로 증명해 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우리의 마음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나쁜 것을 보지 않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내가 무엇에 시선을 고정하고, 무엇으로 내 영혼의 창고를 채우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일입니다. 알고리즘이 제안하는 ‘신앙적 취향’에 나를 맡겨버리는 순간, 우리는 살아있는 말씀의 통치를 받는 제자가 아니라, 단지 종교적 콘텐츠를 소비하는 ‘고객’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알고리즘의 가장 무서운 점은 우리를 ‘듣고 싶은 말’의 감옥에 가두는 것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목사님의 설교, 내 가치관을 지지해 주는 유튜버의 논평 속에만 머물 때, 우리의 영성은 기형적으로 변해갑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가 듣기 싫어하는 말씀, 우리의 교만을 꺾는 불편한 진리를 통해 우리를 빚으시는데, 알고리즘은 그 ‘거룩한 불편함’을 사전에 차단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에 관한 ‘내 취향의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가?” 이제 우리는 알고리즘이 짜놓은 촘촘한 그물에서 잠시 벗어나야 합니다. 

  리더십의 본질은 방향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의 키를 알고리즘이라는 기계적 장치에 맡기지 않고, 성령의 바람에 맡기는 의도적인 선택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끝없이 이어지는 영상의 연쇄 고리를 끊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아무런 자막도, 화려한 편집도 없는 투박한 성경책을 펴야 합니다. 그곳에서 알고리즘이 결코 추천해 주지 않는 ‘자기 부인’과 ‘좁은 문’의 가치를 발견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의 화면이 여러분을 정의하게 두지 마십시오. 대신, 매일 아침 우리에게 새로운 은혜를 제안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무르십시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로마서 12:2)

  우리의 정체성은 ‘클릭’ 몇 번으로 결정되는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핏값으로 사신, 세상 그 무엇보다 고귀한 것입니다. 오늘, 알고리즘이 만든 가짜 신앙의 안개를 걷어내고, 주님과 대면하는 단독자의 자리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10)

최성만목사(울산오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