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무속신앙을 믿는 그리스도인” 이 말은 “모양이 동그란 세모”와 같이 모순이다.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그 사람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사야의 표현대로 그저 교회 마당만 밟을뿐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세주로 고백하는 자들을 일컫는 말이 아닌가?
주일이면 성경 책을 들고 경건하게 예배당을 찾는 이들이 정작 삶의 중대사를 앞두고, 복술가를 찾는 사람들이 있으니, 믿는 자의 한사람으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기 그지 없다
지금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하나님이 아닌, 두려움이라는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음이 개탄스럽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민낯을 보면 기독교라는 외피를 두른 기복적 신앙이 교인듵의 마음에 쓴뿌리 처럼 박혀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신자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한다고 말하지만, 막상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께 맡기기보다 염려와 두려움이 앞서고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전전긍긍 한다. 이 지독한 두려움이 교인들을 점집으로 혹은 점집과 다를바 없는 예언 기도회로 내모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신자들조차 때로는 하나님을 인격적인 창조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는 다른종교와 다를 바 없는 신으로 취급하게 된다.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것은 탐욕이다.
우상숭배는 나의 욕심의 정점에 서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성경이 말하는 “두려워 하지 말라” 라는 준엄한 하나님의 명령은 간데 없고 오직 우리의 안위 만을 챙기려는 샤머니즘적 본능만 남은 셈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씀은 결코 공허한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미신과 두려움이라는 쇠사슬로부터 해방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2:12)는 말씀처럼 참된 삶의 경건을 회복함으로 경건의 모양이 아닌 경건의 능력을 갖춘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힘써야 한다.
이는 우리의 참된 소망이 이 땅이 아닌 하늘나라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이 시대의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가 말씀을 깊이 묵상함으로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하나님을 기뻐하심을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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