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5월의 햇살이 창가에 머무는 아침입니다. 숲의 나무들이 저마다 가장 연한 초록빛 옷을 갈아입고, 이름 모를 들꽃들이 낮은 곳에서 인사를 건네는 이 눈부신 계절에 우리는 다시금 ‘생명의 신비’를 묵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이 아름다운 지구, 즉 ‘창조 세계’가 지금 무거운 신음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욕심과 무관심이 쌓여 지구가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이지요. 오늘은 이 아픈 창조 세계와 화해하며, 우리가 어떻게 ‘탄소 중립’이라는 사랑의 실천을 이뤄갈 수 있을지 수줍은 마음으로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성경의 첫머리인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고 기뻐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창1:31)
우리가 누리는 맑은 공기, 시원한 바람, 그리고 생명을 길러내는 흙은 그 자체로 하나님의 숨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참 좋았던’ 것들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기며 함부로 사용해 왔습니다. 탄소 중립을 실천한다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셨던 그 처음의 순수함을 기억하고 아껴주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사랑하면 닮아간다고 했던가요? 자연을 사랑한다면 자연의 느린 리듬에 우리를 맞추어야 합니다. 일회용품의 편리함 대신 씻어 쓰는 번거로움을 선택하고, 가까운 거리는 두 발로 땅의 감촉을 느끼며 걷는 일은 지구의 열을 내리는 소중한 ‘기도’가 됩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마음보다는, 나 하나부터라도 덜어내고 비워내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종이 한 장, 물 한 방울에도 깃들어 있는 우주의 노고를 기억한다면 우리는 결코 낭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5월의 교회는 화려한 장식보다 소박한 절제로 단장될 때 더욱 아름답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롬 8:22)
이제 우리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할 형제요 자매로 맞이해야 합니다. 식탁 위의 육식을 줄이고 제철 채소를 감사히 먹는 일, 전등 하나를 끄며 밤하늘의 별을 기다리는 일은 피조물과 화해하는 따뜻한 ‘초록색 참회기도’와 같습니다.
이 5월에는 우리 마음속에 ‘초록색 나무’ 한 그루를 심어보아요. 탄소를 줄이는 일은 지구를 구하는 일인 동시에, 우리 영혼을 맑게 닦는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이 푸른 별 위에서, 우리는 모두 연결된 존재임을 잊지 맙시다. 꽃 한 송이의 향기에 감사하듯, 지구의 아픔에 공감하며 작은 것부터 실천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창조주의 손길이 닿은 모든 생명 위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교계 > 교계일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무속에 빠진 그리스도인_두려움” (2) | 2026.04.30 |
|---|---|
| “서로를 보듬고 가야 할 공동체” (0) | 2026.04.28 |
| "잠언의 지혜로 승리하는 삶" (0) | 2026.04.07 |
|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울산지방 제55회기 지방회 (0) | 2026.04.07 |
| 전쟁과 스타트업 : “실리콘밸리는 왜 전쟁에 베팅했는가” War & Startups (0) | 2026.04.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