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러분, 혹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영화 <앙: 단팥 인생 이야기>를 보셨는지요.
벚꽃이 흩날리는 어느 봄날, 아르바이트생을 구하는 작은 도라야키(단팥빵) 가게에 일흔여섯의 도쿠에 할머니가 찾아옵니다.
평생 한센병을 앓으며 세상과 격리된 채 살아온 그녀의 굽고 일그러진 손가락이 팥을 삶는 장면을 보며, 문득 ‘듣는다’는 것의 우주적 깊이를 찌릿하게 체감합니다.
할머니는 팥을 그냥 불에 올려 끓이지 않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솥단지 앞에서 팥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이렇게 말하지요.
“세상의 모든 것은 언어를 가지고 있단다. 팥이 하는 말을 들어보렴. 비 오는 날과 맑은 날들을 이겨내고 여기까지 와 준 팥의 이야기를 듣는 거야.”
그녀의 이 한마디는 단순한 영화 대사가 아닙니다. 메마른 현대 문명과 우리의 닫힌 영혼을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은유이자, 생명의 기원을 꿰뚫는 신학적 통찰입니다.
우리는 흔히 ‘언어’라고 하면 인간의 입술을 뚫고 나오는 소리나 사전에 갇힌 활자만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본래 ‘말씀(Logos)’은 곧 생명 그 자체였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이 만물을 지어냈습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저 들판에서 햇빛을 머금고 비바람을 견뎌낸 작은 팥알 하나에도 창조주의 숨결이 스며 있고 고유한 언어가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현대 사회를 보십시오. 모두가 자기의 말을 하느라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손바닥만한 스마트폰 화면 속에서도,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이어폰 속에서도 끊임없이 소음이 흘러넘칩니다. 말은 홍수처럼 범람하는데 정작 생명을 살리는 언어는 가물어 메말랐습니다. 왜 그럴까요? ‘듣는 귀’가 닫혔기 때문입니다.
한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해답이 있습니다. 경청(傾聽). ‘기울일 경’ 자에 ‘들을 청’ 자입니다. 내 꼿꼿한 목을 꺾고, 내 몸을 낮추어 상대방 쪽으로 깊이 기울여야만 비로소 들리는 소리입니다. 나의 자아로 꽉 차 있는 사람은 결코 남의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철저히 버림받고 상처 입은 도쿠에 할머니는 역설적으로 차단된 세상과의 벽으로 인해 더 깊은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가 차단된 그 고요한 침묵의 자리에서, 그녀는 만물이 속삭이는 미세한 생명의 언어, 그 바람과 햇살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무소리도, 팥 소리도, 바람 소리도.
우리의 신앙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시편 19편의 기자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없는데 들려지는 역설의 소리입니다.
위대한 창조의 언어는 귀청을 때리는 폭음으로 오지 않습니다. 철저히 낮아진 영혼,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정욕과 옛 자아를 못 박고 비워낸 가난한 심령에게만 들리는 세미한 음성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야말로 위대한 ‘경청’의 역사였습니다. 그분은 병든 자, 소외된 자, 죄인들의 신음 소리에 하늘을 기울이셨습니다. 세상이 귀 막아버린 그들의 고통스러운 언어를 들으시고, 친히 십자가라는 가장 철저한 침묵의 자리로 내려가셨습니다.
도쿠에 할머니가 일그러진 손으로 팥알의 상처를 보듬으며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듯, 주님은 우리의 일그러진 삶을 어루만지며 비탄에 빠진 우리의 곁에서 기꺼이 함께 울어주십니다. 그것이 바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십자가의 ‘헤세드(은혜)’입니다.
우리가 만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은, 곧 그 안에 깃든 하나님의 흔적을 읽어내는 경건한 예배입니다.
오늘 하루, 입술을 닫고 귀를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하나, 우는 아이의 눈물, 매일 마주하는 성도들의 굽은 어깨, 그리고 곁에 있는 이의 소리 없는 한숨 속에도 우리를 향한 절절한 언어가 있습니다. 들리면 역사는 일어납니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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