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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내 평생에 가는 길” 바다 위에서 배운 평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열방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사66:12)

살다 보면 이유 없이 마음이 무거워지는 날이 있다. 별일이 없는 것 같은데도 가슴 한쪽이 조용히 젖어 드는 날, 입에서 조용히 흘러나오는 찬송이 있다. 바로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이다. 

  나는 이 찬송을 참 좋아한다. 영어 원제는 It Is Well With My Soul, 우리말로는 “내 영혼 평안해”로 더 익숙한 이 찬송은 단순한 위로의 노래가 아니라, 깊은 고난을 통과한 믿음의 고백이다.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이 찬송을 부르다 보면 ‘바다’를 떠올리게 한다. 잔잔한 수면 위에 서서히 번져 가는 햇살, 그리고 그 아래로는 보이지 않는 깊은 물결이 흐르고 있는 풍경... 우리 인생도 그렇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여도, 속에서는 수많은 사연과 눈물이 지나간다.

  이 노래의 가사를 쓴 사람은 미국의 신앙인 호레이쇼 스패포드이다. 그는 성공한 변호사였지만 1871년 시카고 대화재로 큰 재산을 잃었고, 대서양에서 일어난 배 침몰 사고로 네 딸을 한꺼번에 잃었다. 아내에게서 도착한 전보에는 단 한 줄, “Saved alone.(혼자 구조됨)” 그 문장을 읽는 순간의 공허함을 우리는 감히 다 헤아릴 수 없다.

  그가 아내를 만나기 위해 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던 중, 딸들이 잠든 바다 위를 지나게 되었을 때, 그는 이 가사를 적었다고 전해진다. 상실의 한복판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이 고백은 억지로 꾹 눌러 담은 위로가 아니었다. 모든 것을 잃고도 여전히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의 숨결이었다. 상황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영혼만은 부서지지 않았다는 고백이었다. 

  그리고 이 가사에 곡을 붙인 사람은 복음 전도자이자 작곡가였던 필립 폴 블리스이다. 그의 멜로디는 신기할 만큼 너무 잔잔하다. 격정적인 슬픔 대신, 깊은 곳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평안을 담아낸다. 블리스 역시 짧은 생을 살다가 기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선율은 지금까지 수많은 성도의 눈물과 함께 울려 퍼지고 있다. 나는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말하는 평안은 무엇인가?” 일이 잘 풀릴 때, 건강할 때, 가족이 평안할 때 우리는 쉽게 ‘평안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큰 풍파가 몰아칠 때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이 찬송은 우리에게 다른 차원의 평안을 보여 준다. 상황이 아니라, 영혼의 자리에서 오는 평안.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평안. 특히 3절의 가사 “내 지은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 눈 보다 더 정하리라”라는 고백은 이 찬송의 핵심이다. 

  스패포드는 딸을 잃은 아버지였지만, 동시에 십자가를 붙든 신앙인이었습니다. 그의 평안은 상실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구원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모든 것이 흔들려도,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만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믿음. 그 믿음이 그의 영혼을 붙들었다. 

  우리에게도 각자의 ‘바다’가 있을지도 모른다. 설명하기 어려운 상처, 말로 다할 수 없는 후회, 조용히 삼켜야 했던 눈물. 그러나 그 바다 위에서 이 찬송을 다시 불러 보면 어떨까. “내 영혼 평안해.” 이 말은 괜찮다는 말이 아니다. 다 이해된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하나님이 여전히 나와 함께하신다는 믿음의 속삭임이다. 파도가 높아도 배가 침몰하지 않는 이유는 배를 붙들고 있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길을 걷는다. 잔잔한 강 같은 날도 있고, 거센 폭풍 같은 날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끝자락에서 우리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내 평생에 가는 길…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그 평안이 우리 삶의 마지막 문장이 되기를, 조용히, 그러나 깊이 소망해 본다.

 

박연식 목사(울산수정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