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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아바 아버지"

  ‘아버지’와 ‘아빠’는 내가 세상에 존재하게 했던 근원인 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말에서 느껴지는 온도 차이가 있는 듯하다. ‘아버지’는 의젓하고 무게가 실린 듯한 데 비해 ‘아빠’는 친밀하고 따뜻함이 확실하게 묻어난다.

  나는 일곱 살 때 아버지와 사별하였다. 아버지는 내가 네 살 때부터 아파 누우셨으니 내게 베풀어준 아버지의 다정함은 그저 등잔불 아래 밥상에서 무청 김치를 네 살배기 입에 맞게 잘라 밥숟가락에 올려주시던 모습만 등잔불 빛에 흔들리며 창호지에 비친 그림자처럼 아련하다. 

  나의 아버지는, 서른여섯에 나를 낳아서 3배수 띠동갑이신 어머니의 말씀 속에서만, 가족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이름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별 후 한동안 나는 ‘아버지’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것조차 어색했다. 마흔 후반에 내적치유 프로그램에 가서야 무지막지하게 슬퍼하며 애도한 후에 나는 내 가슴속에 녹슨 못처럼 박혀 있던 아버지를 하얀 구름에 태워 하늘나라로 가시도록 할 수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봉인되어 있던 기억의 문이 열리자, 나는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아버지 없음’이라는 빈자리와 함께 살아왔는지를 비로소 직면할 수 있었다. 친구들이 운동회 날 아버지 손을 잡고 오던 모습, 아버지의 어깨 위에 올라타 세상을 내려다보던 아이들의 환한 얼굴들. 나는 그 장면들을 부러움이 아닌 체념으로 바라보며 자랐다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Abba, Father)라고 부르짖느니라”(롬8:15)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 ‘아바, 아버지여’라고 부르셨다(마가복음 14장 36절). ‘아바’는 아람어로 ‘아빠’를 뜻한다. 그 시대에 하나님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파격이었다. 하나님은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인 주님일 뿐이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넘어 아빠라고 부르셨으니 그 얼마나 놀랍고 생경한 장면이었을까? 예수께 하나님은 멀리 계신 존재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신뢰할 수 있는 가까운 존재였다.

  사도 바울 역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로마서 8장 15절)고 했다. 예수께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른 건, 우리 인류에게 하나님이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에서 친밀과 교제의 대상으로 인식이 바뀐 역사적 순간이었다. 

  1995년 8월, 나도 드디어 한 남자아이의 아비가 되었다. 그 아이가 옹알이를 하다가 처음으로 한 말은 ‘아빠’였다. 그 서툰 발음이 내 귀에 꽂히던 순간의 들떴던 기분은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그 환희도 잠시, 나는 아이가 슬하에 있게 되자 굳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다. 낯설다 못해 낯간지러웠던 그 말, 아빠!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따뜻함을 기억하지 못하는 내게 ‘아빠’라는 말은 남의 옷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내가 갖지 못한 그 따뜻한 그 이름을 아들에게 내어주는 방식도 서툴렀던 것일까.

  그럼에도, 나의 시간은 내가 그리던 이상적인 아비가 되기 위한 몸부림으로 채워졌던 것 같다. 봄이 되면 아이를 품에 안고 산으로 들로 돌아다니며 농가의 사슴과 소, 타조를 보여주었다. 초여름이면 논 위로 날아다니는 제비를 함께 바라보았고, 가을이면 숲에 들어가 알밤을 주워 삶아주었다. 겨울이면 어린 시절 내가 가져보지 못했던 크리스마스의 온기를 아이에게 경험하게 했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었으니.

  아이는 어느새 나를 할아버지로 만들어줄 수 있을 정도로 훌쩍 커버렸다. 이제는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비를 바라보면서 안타까워하는 일도 벌어진다. 

  그러다가 문득 그 아이가 부르는 ‘아빠’라는 말이 더 마음에 와닿는다. 어쩌면 그 한 마디 안에 내가 평생 찾아 헤매던 무언가가 들어 있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아버지와 아빠’그 두 단어를 선택하며 산다.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마음속으로 그리며, 내 곁의 아이에게 아빠로 불리길 내심 바라면서도 여전히 그 단어를 낯설어한다. 

  그래도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 혼자 있을 때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 일곱 살 어린아이로 돌아가 나의 창조주 아빠에게, 하늘에 계신 아빠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한다. 

  돌아다보면, 나는 ‘아버지’라는 책임감으로 성을 쌓고 그 안에서 ‘아빠’라는 다정함으로 꽃을 피우려 애써온 한 사람이었다. 

  오늘 밤, 하늘에 계신 나의 ‘아바 아버지’에게 나직이 물어보고 싶다. 저도 제법 괜찮은 아빠가 되어가고 있습니까?

이한우 집사(1516교회)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 단장 국제정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