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70세의 은퇴한 노신사가 젊은 스타트업 기업에 인턴으로 취직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인턴》을 인상 깊게 봤다.
주인공 벤(로버트 드 니로 분)은 인생의 경험이 풍부하지만, 결코 젊은 CEO나 동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내세워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훈계하는 대신, 그는 그저 묵묵히 제자리를 지킨다. 누군가 바빠서 밥을 못 먹으면 조용히 스프를 챙겨주고, 사무실 한구석에 쌓인 지저분한 짐들을 아무 말 없이 치운다.
영화 속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한 젊은 동료가 벤에게 묻는다. “요즘 세상에 왜 촌스럽게 항상 손수건을 양복 주머니에 넣고 다니세요?” 그러자 벤은 이렇게 대답했다.
“손수건은 나를 위해 갖고 다니는 게 아니야. 누군가 울고 있을 때 빌려주기 위한 거지. 그게 신사의 품격이라네.“
나는 이 대사에서 오늘날 우리 목회자들이 갖추어야 할 진정한 ‘영적 품격’을 보았다.
우리는 흔히 목회의 승부처가 ‘강단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유창한 언변으로, 얼마나 깊이 있는 신학적 통찰로 회중을 압도하느냐에 골몰한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지금은 ‘설교 과잉의 시대’이다. 유튜브만 켜면 세계적인 석학들과 명설교가들의 말씀이 쏟아진다. 성도들이 지식이 부족해서 삶이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이 진짜 목마른 것은 ‘말 잘하는 설교자’가 아니라, 강단에서 내려와 내 옆에 섰을 때 ‘예수의 향기’가 나는 한 사람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이렇게 권면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립보서 4:9)
바울은 단순히 “내가 ‘말한’ 것을 행하라”고 하지 않았다. “내게서 ‘본’ 바를 행하라”고 했다. 이는 그의 메시지가 입술에만 머물지 않고, 그의 삶과 인격 전체에 녹아 있었음을 의미한다.
강단 위에서의 모습이 ‘권위’라면, 강단 아래에서의 모습은 ‘품격’이다. 설교가 끝난 후, 식당에서 봉사자를 대하는 태도,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날 때의 표정, 그리고 고통받는 자 곁에서 조용히 건네는 위로의 손길... 성도들은 목회자의 화려한 언변보다 그 소박한 뒷모습에서 하나님을 본다.
영화 속 벤이 젊은 CEO에게 존경받았던 이유는 그가 경영을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보여준 ‘어른의 품격’ 때문이었다. 불안해하는 젊은 대표 곁에서 흔들리지 않는 평온함을 보여주었고, 그녀가 울 때 조용히 손수건을 건넸다.
이제는 은퇴를 앞두거나 혹은 현역에서 한발 물러난 목회자일수록 이 ‘영적 품격’은 더욱 빛을 발한다. 더 이상 강단에서 소리 높여 외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온유한 눈빛과 넉넉한 인품으로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줄 ‘영적 손수건’을 준비하고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설교가 아니겠는가?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린도후서 2:15)
말씀을 맺으며 목사인 저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말을 잘하는 기술자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인격자인가. 강단에서 내려온 순간, 진짜 설교는 시작된다. 성도들은 우리의 입이 아닌, 우리의 삶에서 배어 나오는 그 은은한 품격을 기대하고 있다.
편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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