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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대영박물관 관람기(18) ‘히스기야의 무릎’이 산헤립의 18만 5천 대군을 꺾다!

  인류 역사의 거대한 유산이 보존된 영국 대영박물관. 그중에서도 앗시리아 전시실(10a, 10b)에 들어서면 높이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부조들이 관람객을 압도한다. 이는 주전 701년, 당시 중동의 패권자였던 앗수르 왕 산헤립이 남 유다의 견고한 요새 ‘라기스(Lachish)’를 함락시킨 장면을 기록한 것이다. 돌판에 새겨진 정교한 묘사는 당시의 참혹했던 전쟁터와 인간의 기계적 전술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사진 1)(사진 2)

(사진1) “공성 장면 상상화”_서진교 목사 제공

 

(사진2)  “성 공격 투척용 돌과 무기들” _서진교 목사 제공

    라기스 성은 예루살렘의 남서쪽 관문으로,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세운 난공불락의 요새였다(역대하 11:5~12). 그러나 산헤립의 군대는 강력했다. 부조 속에는 성벽을 허물기 위해 거대한 공성퇴(Battering ram)가 인공 토성을 타고 올라가고, 그 뒤를 수많은 궁수와 돌격부대가 엄호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사진 3)

(사진3) “라기스 공격 장면 부조”_서진교 목사 제공

  함락된 성에서 끌려 나오는 포로들, 고문당하는 희생자들, 그리고 전리품을 확인하며 이동용 왕좌에 위엄 있게 앉아 있는 산헤립의 모습은 인간의 군사력과 전술이 모든 것을 결정짓는 것처럼 보인다.(사진 4)(사진 5)

(사진4) “전쟁 상황을 지켜보는 산헤립”_서진교 목사 제공

 

(사진5) “포로로 끌려가는 백성들”_서진교 목사 제공

  산헤립은 이 승리에 도취하여 다음 목표인 예루살렘을 향해 오만한 편지를 보낸다. “히스기야를 새장에 갇힌 새처럼 가두었다”는 그의 연감 기록은 당시 유다가 처했던 절망적인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성경 열왕기하와 이사야서는 이 긴박한 상황을 다른 시각에서 조명한다. 18만 5천 명이라는 압도적인 대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했을 때, 히스기야 왕이 선택한 것은 외교적 수사(Rhetoric)’나 추가적인 군사 배치가 아니었다. 그는 앗수르 왕의 모욕적인 편지를 들고 여호와의 성전으로 나아갔다. “히스기야 왕이 듣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두르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왕하 19:1)

  이는 인간의 힘이 끝나는 지점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신앙의 결단’이었다.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에게 중보 기도를 요청했고,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명확한 답을 주셨다.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오던 길로 돌아가리라.”(왕하 19:32~33)

  결과는 전무후무한 초자연적 승리였다. 그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영을 치시매, 아침에 일어나 보니 18만 5천 명의 대군이 모두 송장이 되어 있었다(왕하 19:35). 세계 최강의 무기와 전술로 무장했던 산헤립은 비참하게 퇴각했고, 결국 자신이 섬기던 신전에서 아들들에 의해 암살당하며 생을 마감한다.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산헤립 연감’은 유다의 성읍들을 점령했다고 자랑하면서도, 정작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는 기록은 남기지 못했다. 이는 성경의 기록이 단순한 신화가 아닌, 역사적 팩트에 근거하고 있음을 역설적으로 증명하는 외적 증거다.

(사진6) “불에 그을린 산헤립 연감 사료”_서진교 목사 제공

  산헤립의 라기스 정복 부조와 불에 그을린 연감 자료들은 우리에게 묻는다(사진6) “세상의 힘이 압도하는 현실 앞에서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

  아무리 뛰어난 전략과 막강한 군사력이 세상을 다스리는 듯 보여도,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는 하나님이시다. 택한 백성을 보호하시고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지금도 만왕의 왕으로 통치하고 계신다. 인간 군대가 결코 하나님을 이길 수 없음을 역사는 증명한다.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용하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아멘.” (시편 33:10~11)

  히스기야의 기도가 18만 5천 대군을 이겼듯이,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기도가 세상의 그 어떤 장벽과 무기보다 강력함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역사의 승자는 군사력을 가진 자가 아니라,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고, 오직 그분께 무릎 꿇는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