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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모차르트의 등장을 허용하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네 존귀를 그에게 돌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라”(민27:18-20)

  “전능하신 하나님, 당신은 취한 주정뱅이를 통해서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려주시고, 왜 저 같은 사람에게는 듣는 귀만 허락하셨습니까?“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궁정 음악장 안토니오 살리에르가 십자가를 불태우며 절규하는 장면은 언제 보아도 섬뜩한 전율을 준다. 

  살리에르에게 모차르트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였다. 경박하고, 예의 없으며, 제멋대로인 젊은이. 그러나 그 ‘철없는 그릇’에 담긴 음악만큼은 반박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

  살리에르의 비극은 재능의 부재가 아니었다. 그의 진짜 비극은 자신과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새로운 세대’를 인정하지 못한 마음의 빗장에 있었다.

  모차르트에게 자기와 다른 방식으로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살리에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에게 ‘은혜’란 성실하고 열정적이고 착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보상이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롬4:4)

  미국의 저명한 변증가이자 목회자인 팀 켈러(Tim Keller) 목사는 그의 저서 『탕부 하나님(The Prodigal God)』에서 탕자의 비유를 통해 중요한 통찰을 준다. 켈러 목사는 “형(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적이 없지만, 정작 아버지의 마음을 잃어버렸다”고 지적한다.

  살리에르는 성실한 ‘형’이었다. 그는 금식하고 기도하며 율법을 지켰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이 모차르트에게 부어주시는 ‘값없는 은혜’를 참을 수 없었다. 

  미국 대학 강단에서 교수들은 종종 “Mystery of Iniquity(불법의 신비)”를 이야기한다. 이유 없는 악의 근원은 ‘교만’과 ‘시기’라는 것이다. 내가 가지지 못한 은사를 남이 가졌을 때,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인정하지 않고 ‘나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리더가 아니라 파괴자가 되고 만다. 

  허먼 멜빌의 유작으로 출판되고 오페라로도 인기가 있는 <빌리 버드>에 등장하는 착하고 순수한 빌리 버드는 이유 없는 상관-클래가트-의 시기와 질투로 결국 빌리 버드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도무지 길들여지지 않은 모차르트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선물에 대한 살리에르의 좌절과 절망을 문학적 깊이로 다룬 것 같은 이 책에서 멜빈은 클래가트의 파괴적인 질투를 “타락한 지성이 순수를 만났을 때 느끼는 절망”이라고 묘사한 것은 아주 정확한 지적이다.

  살리에르, 탕자의 형, 글래가트는 모두 다른 얼굴을 가진 같은 모양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사악한 절망이 논리와 정당성으로 가장하여 우리 공동체 안에 나타나기 시작하면 젊은 모차르트의 등장을 허용하지 않게 된다. 속살을 드러내며 춤을 춘 다윗이 이스라엘의 목자가 된 것처럼 다가오는 젊은 모차르트로 하여금 춤을 추게 할 때에 어려운 이 시대의 교회가 다시 일어서는 기회를 제공 받게 될 것이다.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