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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낡은 책장에서 다시 끄집어 낸_달과 6펜스

  삶의 분주함 속에서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 적이 언제인가요?

  오래전 사춘기 때 읽었던 서머셋 모옴의 소설 《달과 6펜스》을 낡은 책장에서 끄집어냈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4)" 6펜스는 주머니에 넣고, 눈은 달을 바라보십시오"

  제목 참 묘하지 않나요? 

  여기서 ‘달’은 손에 잡히지 않는 꿈, 이상, 그리고 영혼의 세계를 상징합니다. 반면 ‘6펜스’는 당시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의 은화, 즉 떼려야 뗄 수 없는 세속적인 현실과 물질적 가치를 의미하죠.

  소설 속 주인공 스트릭랜드는 중년의 나이에 증권 중개인이라는 안정된 직업과 가정을 버리고, 그림을 그리겠다며 파리로, 타히티로 떠납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죠. “아니, 그 좋은 6펜스(현실의 안락함)를 놔두고 왜 잡히지도 않는 달(예술적 이상)을 쫓아가는 거야?” 라고 말입니다.

  물론, 스트릭랜드처럼 가족을 무책임하게 버리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오늘날 우리 가슴을 서늘하게 찌릅니다. 

  “당신은 지금 땅에 떨어진 6펜스 동전을 줍느라, 고개를 들어 달을 보는 법을 잊어버리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더 좋은 집, 더 높은 연봉, 더 안정된 노후... 이것들이 바로 우리 시대의 ‘6펜스’겠죠. 물론 중요합니다. 6펜스가 없으면 당장 빵을 살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오직 그 동전 줍기에만 혈안이 되어, 우리 영혼이 진정으로 숨 쉴 수 있는 ‘달’의 세계, 즉 하나님이 주신 소명과 본질적인 가치를 헌신짝처럼 버릴 때 발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딜레마를 아주 명쾌하고도 무섭게 지적하셨습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

  여기서 ‘온 천하’가 바로 세상의 모든 6펜스를 다 긁어모은 성공일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느라 ‘목숨’, 즉 내 영혼의 생명력을 잃어버린다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통장 잔고는 늘어났는데 마음은 공허하고, 사회적 지위는 높아졌는데 하나님과의 거리는 멀어졌다면, 우리는 지금 6펜스를 줍다가 달을 잃어버린 셈입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현실적 성공’이라는 미명 하에 정직을 버리고, 사랑을 포기하고, 신앙의 양심을 타협합니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어,” “남들도 다 그래,”라며 합리화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여러분, 땅만 보고 걷는 사람은 결코 별을 볼 수 없고, 6펜스에 집착하는 사람은 결코 달빛이 주는 황홀한 위로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로새서 3:2)

  이 말씀은 현실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Perspective)을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땅의 6펜스를 열심히 벌더라도, 우리의 마음과 시선은 항상 저 높은 곳, ‘달’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의 가치에 고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 단순히 동전을 모으는 여정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현실의 성공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6펜스는 주머니에 넣고, 눈은 달을 바라보십시오.

  눈앞의 이익 때문에 영원한 가치를 팔아넘기지 마세요. 훗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너는 평생 동전만 줍다 왔구나”라는 말을 듣는다면 얼마나 허망하겠습니까. 비록 주머니는 좀 가벼울지라도, 영혼만은 저 달빛처럼, 아니 그보다 더 밝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삶을 사시길 응원합니다.

  현실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이고,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성거(거룩함을 이룸)입니다. 오늘 하루, 잠시 고개를 들어 달을 보십시오. 그리고 그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지금, 6펜스를 뒤로하고 달을 향해 걸음을 시작해 봅시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3:14)

최성만 목사(울산오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