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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세상사는 이야기

순종이 죄다.

 

  주님께서는 순종이 제사(예배)보다 낫다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순종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그것보다는 무엇에게, 어느 누구에게 순종하는가의 문제입니다. 길들여진 순종은 노예 근성 입니다. 자연스런 순종이라야 사랑의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옛 선비사상의 뿌리를 들춰보면 하늘을 공경하고 인간을 이롭게 하는 것입니다. 홍익인간이라는 말입니다. 나라에 충성하고 라는 뜻은 신하는 임금을 하늘처럼 우러러보며 임금님께 불충하지 않으려고 심신을 갈고 닦습니다. 왕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여 오지로 귀양살이를 하면서 아침 저녁으로 임금님이 계시는 궁을 향하여 삼배, 세번씩 매일 문안의 절을 올리는 것을 예라고 했습니다.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 동안 부모의 무덤을 떠나지 않고 묘지기를 하면서 삼배 옷을 입습니다. 죄인이라는 표시입니다. 박한 음식으로 겨우 연명할 뿐입니다. 차디찬 땅 속에 묻어놓고 자식된 도리를 다하기 위해서 등 따스고 배부르게 사는 것을 포기합니다. 효를 근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열녀문을 바라보면서 가문의 많은 열녀들이 난 것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부창부수(夫唱婦隨), 여필종부(女必從夫)라고 해서 아내는 남편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남편이 노래하면 같은 노래를 불러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따라 죽기까지 해야합니다. 이것이 조선 가정의 부부의 미덕이 되었습니다. 가정의 근본을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한 걸음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칠거지악(七去之惡)이라고 해서 일곱가지 중 어느 한 가지라도 소홀히 해도 아내는 소박을 당하는 것입니다. 아무런 말 한마디를 할 수도 없습니다. 


  이쯤되고 보면 우리 민족의 사상이 흐르는 그 근원과 뿌리가 무엇인지를 결론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순종을 미덕으로 살아왔습니다. 하루 이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 유구한 반만년 역사의 자랑거리(?)가 된 것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런 순종을 학습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익숙한 탓인지 순종해야 할 것에는 정작 반항합니다. 순종하지 말아야 할 것들에는 잘도 순종합니다. 이렇게 따지고 들면 순종이 미덕이 아니라 그런 순종이야말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전 세계가 펜데믹에 빠져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게 만든 탓에 교회마저도 철저하게 순종하고 있습니다. 순천자는 흥하고, 역천자는 망한다(順天者興逆天者亡). 과연 하늘은 무엇일까요? 흥하고 망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정부는 정부대로 최대한 자기 편으로 면책적 자기합리화를 꾀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가 권력을 위한 수단과 도구로는 안성맞춤이고 찬스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삼위일체 이듯이 코로나 시대를 지나면서 사단이 가져다 준 삼위일체를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사단이 주는 죽음이라는 두려움이 하나님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부 권력을 비롯한 중대본이 성자의 자리에 보좌를 틀고 있습니다. 사회적 분위기가 성령의 바람보다 더 강력한 권능으로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 순종해야 마땅한 교회마저도 죽음의 두려움에게 보좌를 내어 드리고 있습니다. 정부 권력의 말한마디에 절대 복종 내지는 충성을 자처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분위기를 빙자하여 성령님께 민감해야 할 성도들이 아주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진작에 삼위일체되신 하나님께 이렇게 까지 순종했다면 아마 세상은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졌을 것입니다. 교회마다 선한 감동과 영향력은 민족 정신을 일깨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보다 더 가까이 회복되어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누구를, 그 무엇을 비판하거나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비판의 기회이고 자신의 실체를 들여다 보는 것 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역하는 법안들과 사회적 분위기를 정당화시키고, 더욱이 미화시키려는 사람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습니다. 정부의 권력남용과 독선, 그리고 포퓰리즘에 빠져 있는 내 모습이 서글프다가도 우선 입에 달디단 사탕 몇 알 처럼 갖은 명분의 지원금을 기다리게 되고 즐겨하게 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만큼 익숙해져가고 있습니다. 어디에, 누구에게 순종해야하는지 드디어 새로운 선악과의 맛에 영혼을 팔아버리곤 합니다. 순종이 선일까요 악일까요? 이러한 순종이 과연 의일까요 죄일까요?


  결론은 이렇습니다. 신명기적인 복은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생명과 복이 있습니다. 불순종하는 자에게는 죽음과 저주가 있습니다. 이 두가지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이스라엘 목전에 나란히 놓아 두시고 계십니다. 선택은 자기 몫입니다. 자기 선택에 따라 생명과 복을 누릴 수도 있고 죽음과 저주의 심판 아래에 놓일수도 있습니다. 


  당신에게서의 순종은 복입니까? 죄입니까? 나는 오늘도 순종의 죄사슬에 매여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 코로나 시대를 사는 저의 모습입니다. 이 사슬을 끊어놓을 자를 찾고 있습니다. 당신이면 그런 능력이 있을 것이라고 충분히 믿을 수 있습니다. 이 사슬이 점점 목죄어 오고 있습니다. 제발 오셔서 이런 순종의 죄사슬을 끊어 주시옵소서. 


진영식 목사

소리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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