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말 가까운 지인 중 한 분이 모 대기업의 부사장으로 일하다 퇴직하셨다. 한참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를 마무리하지 못한 채 갑작스러운 발령과 함께 자리를 떠나야 했다. 오랜 시간 마음을 쏟아 준비해 온 일이었고, 처음 기획부터 진행까지 대부분의 과정에 그의 손이 닿아 있었다. 그러나 더 젊고 신규사업 파트 경험이 많은 후배가 그 자리에 임명된 것이다. 연말 부부 모임에서 그는, 환경 변화와 회사 입장 등의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고 자조하듯 말했다. 평생 회사 일에 열정을 쏟아온 그분의 고백을 들으며 문득 성경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 홀로 느보산에 올라 가나안을 바라보며 서 있는 모세의 뒷모습이었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 근교에 있는 느보산은 해발 700미터 정도의 높이다. 그런데 실제로 여행해 보니 언덕처럼 완만하게 느껴졌다. 산 정상에 모세 기념교회가 있고, 이탈리아 조각가 지오바니 판토니의 작품인 뱀 모양의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다. 성경 속 놋뱀 사건을 상징하는 듯했다. 아마 모세의 마지막 여정에서 유대 백성의 패역함과 그의 지도력을 상징하는 놋뱀을 세워 그의 인생을 기념하려는 듯했다. 느보산에 오르면, 여행자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스라엘 땅이 있는 서쪽을 향하게 된다. 바로 눈앞에는 예리코(여리고) 땅이 보이고 그 뒤로 잔잔한 사해와 요르단강(요단강) 건너, 멀리 예루살렘이 가물거린다. 광야의 건조한 바람과 강한 햇빛 속에서도 약속의 땅을 바라보는 여행자의 마음은 뜨거워졌다.
성경은 느보산 정상에서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았다고 전한다. 그곳에서 모세는 평생을 걸어온 여정의 끝에 선다. 이집트(애굽)를 떠난 날부터 광야의 시간까지 수많은 기적과 실패, 순종과 분노가 그의 인생에 겹겹이 쌓여 있었다. 홍해를 가르고, 광야에서 율법을 받고, 수많은 원망과 반역 속에서도 끝까지 백성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본다면 가나안 입성의 가장 큰 공로자로 앞장서 첫발을 내디딜 사람은 모세였다. 그러나 그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밟을 수 없었다. 하나님은 그에게 가나안 땅을 멀리서 보여주시기만 했다.
나는 느보산 정상에서 이스라엘 땅을 바라보며 모세의 마음을 반추해 보고 하나님의 뜻을 묵상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모세의 마음 한편에 아쉬움이나 인간적인 탄식은 없었을까. 그러나 그는 불평도 자기변명도 없이 침묵한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내려놓음의 깊이를 보았다. 모세는 결과를 소유하지 않았다. 자신의 업적을 주장하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새기려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을 하나님이 마무리하시는 것을 바라보았을 뿐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내가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느냐’였다. 가나안 땅의 흙을 밟는 일이 아니라, 그 땅이 하나님의 뜻 안에 열리는 것이었다.
성도들에게 신앙은 종종 성취로 오해되곤 한다. 기도는 응답받아야 하고, 헌신은 보상으로 이어져야 하며, 믿음은 눈에 보이는 열매로 증명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바람대로 되지 않을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느보산의 모세는 진정한 신앙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신앙이란, 끝내 내 손에 쥐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물러설 수 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하여, 느보산은 실패의 땅이 아니라 가장 성숙한 믿음의 자리를 상징하게 되었다. 기꺼이 다음 세대에게 길을 열어 주는 곳이자 하나님께만 영광이 돌아가도록 조용히 무대에서 내려오는 곳으로 남았다. 진정한 지도자는 자기 이름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 없이도 공동체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게 하는 것임을 모세는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느보산은 찾아온다. 내가 준비해 온 일을 다른 사람이 이어받을 때, 내가 기도하며 뿌린 씨앗을 누군가가 거둘 때 사람들은 문득 느보산 위에 서 있는 기분이 된다. 나의 지인처럼 분명히 바라볼 수 있는 거리에서 삶의 한 장면을 놓아주어야 할 때가 있다. 그 순간 신앙은 시험대에 오른다. ‘이 일이 나를 증명해 주지 않아도 괜찮은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만족할 수 있는가.’
느보산 정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묵상하던 그 시간, 모세의 침묵은 나에게 믿음의 웅변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모세가 바라본 가나안은 단순한 땅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나님만 주인 되셔서 은혜로 열어 주시는 나라였을 것이다. 그 나라를 바라볼 수 있었기에 비록 들어가지 못했어도 그의 인생은 실패가 아니었고 오히려 은혜의 자리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내려놓음은 패배가 아니라 신뢰이며, 물러섬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또 하나의 순종인 것이다. 아마 모세는 느보산 정상에서 조용히 고백했을지도 모른다.
“이 일은 제 것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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