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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서양 중세 장원의 원형, 코헴”

 

  어릴 적 동화책 속 왕자와 공주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초월적인 용기로 악을 물리치고, 완벽한 사랑을 이루며, 궁전에서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해 세계사를 배우면서 유년의 환상은 서서히 흐려졌다. 동화 속 수많은 왕자와 공주들은 사실 중세 유럽 각 지역 영주의 아들과 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이웃 나라에서 온 백마 탄 왕자님은 사냥하다 길을 잘못 든 인근 장원의 영주 아들일 뿐이고 궁전이란 것도 영주가 살던 성(城)에 불과했다. 무수한 동화가 탄생한 것도 그만큼 많은 영주들이 유럽 땅에 존재했기 때문이리라.

  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곳곳에서 봉건 영주가 살던 고성(古城)을 만난다. 대부분은 외부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해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져 있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옛 영주의 권세를 과시하듯 웅장한 건축미와 위압감이 느껴진다. 그중에서도 독일의 코헴성은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AD 1000년경에 지어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으로, 모젤강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다. 영주가 자신의 장원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도록 설계된 구조이며, 해자 역할을 하는 모젤강 덕분에 성은 더욱 견고해 보였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4:16)

  나는 우선 성의 동화 같은 외관에 감탄했다. 우아함의 절대미는 저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내부 또한 중세 기사들의 갑옷과 앤티크 가구, 오래된 그림들이 놓여 있어 시간의 향기가 났다. 더욱이 성 꼭대기에서 내려다본 코헴의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집들은 성을 중심으로 모젤강 주변에 평화롭게 엎드려 있었다. 전형적인 중세 마을의 원형을 바라보며 나는 문득 장원을 지탱했던 농노들을 떠올렸다. 궁전 속에 머물렀던 나의 시선은 척박한 땅을 일구며 고된 삶을 살아가야 했던 농노들에게로 옮겨졌다.

  농노는 봉건 영주에게 속한 비자유민이었다. 영주의 허락 없이 장원을 떠나거나 결혼할 수 없었고, 자신이 경작한 땅의 수확물도 마음대로 가질 수 없었다. 오직 노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최소한의 집과 약간의 소유권이 허락된다는 것뿐이었다. 그들은 매주 영주의 직영지를 경작해야 했고, 탁영지를 얻기 위해 비싼 경작료를 내야 했다. 공동 대장간이나 방앗간을 이용할 때도 사용료를 내야 했으며, 수시로 장원 부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들의 오두막은 진흙과 나무로 지어져 습기와 곰팡이로 가득했다. 창도 없어 환기조차 되지 않았다. 밤이면 가축들과 한 공간에서 잠을 청해야 했는데, 돼지·말·닭 등의 체온이 뒤섞인 악취 나는 공간이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막아 주었다니 참으로 모순된 현실이었다. 식사는 대부분 귀리나 보리로 끓인 묽은 죽이었고, 고기는 구경하기 어려웠다. 해어진 옷도 어두운색만이 허락되었고, 머리 모양조차 규제를 받았다. 아름다움을 누릴 권리는 오로지 영주만의 특권이었다. 그토록 척박한 삶 속에서도 농노들은 묵묵히 견디며 자신의 시간을 살아냈다.

  시대와 제도는 변하고 중세는 이제 몇몇 고성의 유적 속에만 남았다. 생각해 보면 이름 모를 농노들의 땀방울 위에 왕자와 공주의 동화도 가능했을 것이다. 농노들은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영주의 삶을 누리고 싶지 않았을까. 따뜻한 잠자리와 고기 한 점이 얼마나 간절한 소망이었을까. 세상이 기억하지 못하는 농노들의 희생을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고 그들의 눈물을 친히 닦아주셨으리라. 

 물론, 영주와 그 가족만의 고통도 있었을 것이다. 성과 영지를 지켜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은 온전히 그들의 몫이었기에, 전쟁이 일어나면 기사와 농노들을 이끌고 진두지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농노들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왜냐하면 영주가 ‘갑’의 위치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이는 비단 서양 중세만의 모습은 아니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인간은 본능적으로 ‘갑’이 되기를 꿈꾸고 자기 아래에 ‘을’을 두고 싶어 한다. 갑은 을의 추격을 두려워하며 희소성을 지켜내려 애쓰고, 을은 그 벽을 넘어설 수 없어 분노한다. 한 분야의 갑이 다른 분야에서는 을이 되기도 하며, 상황에 따라 두려움은 분노로, 분노는 다시 두려움으로 뒤바뀐다. 인간이 상대적 위치에서 정체성을 찾으려 할 때 교만과 절망 사이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중세 농노들이 하루아침에 영주가 된다고 해서 과연 세상 역사가 선하게 이어질 수 있었을까. 인간의 악한 본성은 누구에게나 내재한다. 의인은 하나도 없으며, 모두가 은혜의 대상일 뿐이다. 

  그렇다면 ‘갑’과 ‘을’이라는 구도가 아닌 ‘리더’와 ‘헬퍼’라는 관점으로 역할을 바라본다면 어떨까. 리더이든 헬퍼이든 고유한 사명과 연결된다면 그 삶은 아름다울 것이다. 한 분야의 리더가 다른 분야에서는 헬퍼가 되고, 반대의 경우가 되더라도 사명과 연결된다면 결코 두려움이나 분노도 설 자리가 없을 것이다. 나의 필요보다 상대의 필요-리더의 외로움이나 헬퍼의 소외감-를 먼저 살피려는 마음이 있다면 세상은 좀 더 조화롭게 변해 갈 것이다. 물론,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겠지만 근간이 되는 건 결국 자신의 역할을 사명으로 바라보는 시선일 것이다. 

  코헴성의 돌벽 위를 맴도는 엄중한 권세도 역사의 침묵 속에 낡아져 지금은 인간이 쌓아 올린 힘의 덧없음을 고하고 있지 않은가. 리더이든 헬퍼이든, 사명 안에 있을 때 그 인생은 가장 귀하다. 사명은 사회적 위치보다 선행하며 사회적 위치를 뛰어넘는다. 상대적 위치에 마음을 빼앗기는 순간 사명은 흐려질 뿐이다. 인간은 쉽게 탐욕에 빠지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 그 사실만이 우리의 진정한 소망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