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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 서울의 데칼코마니, 타이베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골3:1)

  성향이 비슷한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편안함은,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에게서 신선한 매력을 발견할 때도 있지만, 비슷한 성향의 사람과 있을 때 확실히 긴장감이 덜하다. 아마 그(그녀)의 마음이 내 마음과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리라. 

  여행도 마찬가지다. 멀고 낯선 땅에서 마주치는 모험적 경험도 좋지만, 때로는 가까운 거리에서 익숙한 풍경과 정서 안에 편안하게 안기고 싶을 때가 있다. 어쩌면 그곳이 내가 살고 있는 도시와 닮아 있기에 그곳의 희로애락까지도 쉽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내겐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가 그런 곳이다. 두 시간 반이면 닿는 비행거리, 익숙한 동아시아권 문화, 한국과 비슷한 수준의 치안과 위생 등은 편안함을 안겨준다. 게다가 사회현상마저 놀라울 만큼 한국과 닮아 있다. 

  서울보다 훨씬 작은 도시지만, 타이베이의 일상은 그 무게감에서 서울과 다르지 않다. 대만 역시 학벌과 스펙을 중시하며, 명문대와 대기업, 문화 및 의료 인프라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젊은이들은 진학과 취업을 위해 수도권으로 몰려들지만, 그곳의 월세는 지방보다 두 배 이상 비싸다. 실업률은 높고 학력 대비 임금도 낮다. 비싼 집값과 불안정한 고용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게 만든다. 결국 삶의 무게에 짓눌린 젊은이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타이베이 주변을 떠나지 못한다.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다. 타이베이의 위성도시가 계속 확장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봄 다시 타이베이를 여행해 보니, 도심을 향한 욕망이 서울과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었다. 이왕이면 수도권에서 타이베이로, 타이베이의 중심 지역구로, 타이베이의 원심 지역구로 이동하고 싶어 했다. 타이베이 외곽 주거자들 사이에선 불평등의 세계로 밀려났다는 상실감이 만연해 있었다. 반면, 원심에서는 버거운 월세를 감당하면서까지 밀려나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상황이었다. 경기도로, 서울의 위성도시로, 서울 도심으로, 강남이나 한강 조망권 특구로 안착하려는 한국 상황과 너무나 흡사했다. 

  주거지가 곧 개인의 정체성이라 믿는 타이베이의 욕망이 마치 불빛을 향해 날아드는 부나비 같아서 안타까웠다. 결혼 시장에서는 ‘타이베이 거주 여부’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 당연한 관행이 되었다고 한다.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청년들은 절망하고, 부모의 경제적 지원 여부가 삶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는 얘길 들으며 이 모든 세태가 인간 사회의 공통점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타이베이 청년들은 퇴근길에 도교 사원을 찾는다. 신이라 믿는 조형물 앞에서 점괘를 구하고, 향을 피워 주문을 외우며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어쩌면 그 모습은 오래전 바다를 항해하던 어부들의 두려움, 지진이 잦은 섬나라의 불안이 청년들의 일상에 각인된 흔적일지도 모른다. 화려한 홍등으로 물든 타이베이의 밤은 아름다웠지만, 나는 홍등 이면에 도사린 두려움과 허상을 함께 보았다.

  대만은 TSMC 등 반도체 기업을 기반으로 눈에 띄는 경제 성장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중국과의 긴장 속에서 전쟁의 공포를 안고 살아간다.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 구조 속에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 역시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물론 이는 비단 대만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작금의 국제 정세 속에서 어느 도시가, 어느 국가가 미래를 장담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부유한 자도 가난한 마음으로 설 수 있고, 가난한 노동자도 세상을 다 가진 자처럼 풍요롭게 살아갈 수 있다. 이런 삶의 자세는 천국을 소유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놀라운 비밀이다. 마음속에 겸손함과 부요함을 동시에 품은 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일체의 비결을 배운 자처럼 당당할 수 있다. 결국,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도시 한복판의 고급 오피스텔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마음속에 임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은 끊임없이 더 높은 곳으로, 더 중심부로, 더 값비싼 곳으로 우리를 몰아세운다. 도달하지 못하면 낙오자로 낙인찍는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신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진정한 부요함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자의 것이다.

  하나님의 시선은 우리가 사는 도시나 지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보신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내가 안전한가? 사랑받고 있는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들이다. 분명한 답이 없으면 인간은 불안해진다. 한강 조망권 아파트에 살아도 외롭고, 고급 펜트하우스에 누워 있어도 불안한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

  진정한 평안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시작된다. 주님과 동행할 때 도시 한복판에서도 푸른 초장이 펼쳐지고, 외곽의 작은 자취방에서도 감사가 샘솟을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좋은 아파트나 더 인정받는 일터가 아니라 주님과 함께하는 삶 그 자체일 것이다.

  타이베이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홍차로 만든 밀크티를 자주 마셨다. 찻집 주인의 설명에 따르면 녹차는 찻잎이 발효되지 않은 것이고, 우롱차는 반쯤 발효된 것이며, 홍차는 완전히 발효된 것이라고 한다. 그의 설명을 들으며 문득,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사랑 안에서 새롭게 발효된 자들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땅에 발을 딛고 살지만 전혀 다른, 하늘 시민으로 승화된 존재인 것이다. 이기적 욕망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잘 발효된 홍차처럼 향기를 발할 수 있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삶이 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