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을 사랑하는 내게 한국의 겨울은 길고 지루하게만 느껴진다. 특히 남부 지역의 겨울은 눈 내리는 낭만 한번 없이 차고 건조한 날씨만 이어지기에 더욱 그렇다. 그래서인지 춘분이 될 때까지는 햇살이 짱짱한 남반구의 여름을 그리워하게 된다. 어느 해 겨울 훌쩍 남반구의 도시로 떠나 여름의 절정을 만끽하고 돌아온 적이 있는데, 그곳이 호주의 시드니였다.

시드니는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이자, 이탈리아의 나폴리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와 함께 세계 3대 미항의 하나로 손꼽힌다. 투명한 햇빛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푸른 바다와 유려한 곡선의 하버 브리지, 도시의 랜드마크인 오페라 하우스가 어우러진 풍경은 조망미의 극치를 이루는 곳이다. 시드니항의 절경은 창세기의 말씀, ‘보시기에 좋았더라’를 저절로 떠오르게 했다. 여행객들은 하나같이, 날아오를 듯 산뜻하게 앉은 오페라 하우스를 배경으로 인생 사진을 남기곤 했다. 무엇보다 민소매 셔츠를 입고 산타클로스 모자를 착용한 모습이나, 넘치는 12월의 햇빛을 온몸으로 흡수하는 모습은 남반구만의 광경이어서 북반구에서 온 여행객들에겐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새벽 네 시면 동쪽 하늘이 어느새 벌겋게 밝아오곤 했는데, 이상하게 여름 하늘이 서늘하고 깊어 보였다.
그렇다고 시드니가 처음부터 완성형의 미항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기원은 처절하고 슬픈 유배 식민지 역사 위에 세워진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과 백오십 년 전까지만 해도 호주는 ‘멀고 황폐한 죄수의 나라’라는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1788년 1월 26일, 영국의 아서 필립 선장이 이끄는 함대 ‘퍼스트 플릿(First Fleet)’이 시드니 하버에 닻을 내렸다. 이 배에는 죄수와 그 가족들을 포함해 1,500여 명이 타고 있었으며, 죄수들은 대부분 영국에서 사소한 범죄로 기소된 사람들이었다. 당시 영국은 산업혁명 시대로 감옥이 포화 상태여서 새로운 유배지가 필요했는데, 그 대상이 된 곳이 멀고 황량한 땅 호주였다.
육지에 내린 죄수들이 바위를 깬 돌로 골목을 만들고 교회와 집을 지으면서 도시 시드니가 시작되었다. 정착 초기 그들은 기아와 질병, 원주민과의 갈등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다. 세계사의 정복이나 이주 과정 대부분이 그러하듯 그들의 시드니 정착 과정에서도 원주민 집단 학살이 있었다. 낯선 이주자들로부터 근거지를 강탈당하고 목숨까지 빼앗겨야 했던 원주민의 비애가 미항 시드니에도 깊은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러나 어둠 속에도 소망의 빛은 있었다. ‘퍼스트 플릿’을 타고 함께 이주해 온 이들 중에는 영국 성공회 목회자들도 있었는데, 이들의 주도로 원주민들을 보호하고 화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기독교 단체가 주도하여 교육, 의료, 복지 등 사회 기반 시설이 갖추어지면서 차츰 도시의 질서가 잡혀갔다.
1800년대 이후에는 다양한 나라 출신의 자유 이민자들이 늘어났고 유배 제도도 폐지되면서 시드니는 조금씩 부흥의 길로 접어들었다. 특히, 1850년대 금광의 발견은 골드러시 현상을 불러왔고, 새 땅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으려는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학창 시절엔 ‘백호주의’의 나라로 배웠지만, 여행해 보니 호주는 이미 다양한 인종들로 뒤섞인 문화의 용광로가 되어 있었다.
놀랍게도 이후 경제적으로 성장한 호주는 마침내 세계 각국에 선교사를 파송하게 되었고 우리나라 또한 구한말에 그들로부터 귀한 복음을 받았다. 특히 울산 지역은 호주 빅토리아장로회 소속 선교사들의 관할이어서 신앙 전수의 큰 은혜를 입었다.
그런 시드니를 바라보며 나는 인간 존재의 이중성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되었다. 인간의 역사에는 항상 이면이 존재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영원한 생명을 얻은 의인이 되었지만, 여전히 죄성을 안고 살아가는 죄인이라는 이중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리라. 시드니 미항의 모습을 원경에서 바라보면 지상 낙원과도 같지만, 그 이면에는 미지의 땅에서 척박한 환경을 일궈야 했던 이주민의 두려움과 땀이 배어 있는 땅이 아닌가. 넘치는 햇살 속에 자유와 평안을 만끽하는 땅 같지만, 실은 원주민을 집단 학살하여 얻은 땅이기도 한 것이다.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돌아보면 비단 시드니의 역사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 완전한 선(善)이 존재한 시간은 없었다. 승리 이면의 억압과 악독, 실패 이면의 분노와 원망으로 얼룩진 그늘이 인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테다. 죄수의 신분, 척박한 땅, 살아남기 위한 사투, 약자를 향한 강탈과 억압, 황금만능의 신념, 인종 차별.... 시드니의 외면적 역사를 축약하는 어구는 인간 실체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의 현장으로 인간의 몸을 입고 친히 찾아오셨고 완전한 선을 이루심으로 인류의 영원한 소망이 되어 주셨다. 그늘진 시드니의 역사 속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사회적 정의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한 헌신이 있었다는 사실은 큰 위로가 된다. 나아가 호주가 그늘진 역사를 뒤로하고 19세기 이래 선교 역사에 큰 획을 그은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도 우리에겐 소망이 된다.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건 놀라운 은혜이자 신비이다. 그 은혜의 변화 안에 현재의 시드니가 존재하는 건 아닐까 싶다.
나는 시드니를 떠나오면서 그 도시가 날마다 그리스도로 덧입기를,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건재하기를 기도했다.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앉은 오페라 하우스가 곧 하늘로 비상할 듯, 그날따라 더욱 산뜻해 보였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시니라’(암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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