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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나는 노마드입니다."

  광야를 떠도는 유목민들은 결코 한곳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집이란 땅속 깊이 박힌 기둥이나 견고한 벽돌로 쌓아 올린 웅장한 성(城)이 아니다. 언제든 접고 펼 수 있는 텐트, 오직 그것뿐이다. 풀이 있고 물이 있는 곳이 곧 그들의 고향이며, 계절이 바뀌고 바람의 방향이 달라지면 그들은 주저 없이 말뚝을 뽑고 짐을 꾸린다. 유목민에게 ‘이동’은 가장 적극적인 생존 방식이자, 자연에 지배당하지 않으려는 치열한 삶의 지혜다.

  나는 노마드(Nomad)다. 하나님께서 이동 명령을 내리면 언제든 텐트를 걷고 움직일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기로 결심한 유목민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영적 노마드에 대한 나의 인식은 매우 얕았다. 2008년, 한국에너지공단 재직 시절 북경으로 파견 근무하러 떠나던 때를 떠올리면 아직도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 2년간이긴 했지만, 삶의 기반을 옮겨야 했던 나는 창세기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씀을 마치 비장한 유서처럼 받아들였다. 

  나는 현 위치에서 다른 곳으로 떠남을‘완전한 단절’로 해석했다. 그래서 가구도 버리고, 가전제품도 버리고 책도 버리면서 돌아올 것에 대비하지 않았다. 북경으로 떠나지만 다른 곳으로 또 이동할 거라는 근거 없는 나의 기대를 믿음이라고 생각했다. 더 많이 내려놓고, 더 외로워질수록 그것이 더 옳은 선택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이라고 믿었다. 그것은 일종의 ‘종교적 영웅심리’였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은 분명 새로운 땅으로 가라고 하셨지,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하지는 않으셨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온전한 뜻이라기보다 내가 스스로에게 요구한 가혹한 ‘결기(決氣)’였다. ‘떠나라’는 말씀과 ‘다 끊어내라’는 나의 해석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 극단적인 선택의 방식이 하나님과 직접적인 상관은 없었음을 후에 알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 마음만은 받아주신 것 같다. 조건 없이 자신을 던졌던 그 투박하고 무모했던 진심 말이다. 그 거친 순종을 하나님은 긍휼히 여겨주셨다.

  그 무지한 여정을 온몸으로 통과해 온 지금, 나는 여전히 노마드이지만 삶의 방식은 그때와 다르다. 성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도 빈손이 아니었다. 그는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향했

다. 그의 떠남은 과거와의 무조건적인 단절이나 자기 파괴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맺어주신 관계를 이끌고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이동’이자 ‘지경의 확장’이었다.

  그래서 나도 챙긴다. 울산에서 보낸 6년이라는 시간, 테크노파크 단장으로 일하며 수소와 에너지 산업의 현장에서 겪은 치열한 경험, 잊지 못할 성취,  뼈아픈 실책, 그리고 그 안에서 맺은 소중한 관계의 흔적들을 하나하나 배낭에 담는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본토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은 나의 모든 과거를 지우라는 뜻이 아니라, 그 모든 축적된 시간을 품고 다음 소명의 자리로 확장해 나가는 것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을 받았다. “떠나라”는 음성이 그를 움직이는 나침반이었다. 그는 비록 목적지는 몰랐으나, 적어도 ‘왜’ 떠나야 하는지는 알고 제 발로 길을 나섰다. 이것은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순종이다.

  반면 요셉의 경우는 달랐다. 그에게는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없었다. 그저 형제들이 버려서 어쩔 수 없이 떠났을 뿐이다. 왜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해야 하는지, 왜 억울하게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가야 하는지 아무런 설명도 듣지 못했다.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원치 않는 상황에 떠밀려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떠나야 하는 노마드였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스스로 선택한 아브라함의 길도, 등 떠밀려 떠나간 요셉의 길도 결국은 하나님의 섭리라는 하나의 지점에서 만난다는 사실이다. 방식은 달랐지만,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이동하셨고 그들이 멈춘 곳이 곧 하나님의 뜻이 머무는 ‘약속의 땅’이 되었다.

  나는 요즈음 다시 한번 노마드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이렇게 기도한다. 주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멈추라 하시면 멈추는 그런 자가 되게 하소서. 

  그런데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는 노마드인 것을 알겠습니다. 

  그건 그렇다 하고, 

  지금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로 가야 합니까? 

이한우 박사(1516교회)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