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지금, 기쁜가?
지금으로부터 47년 전 주일학교에서 전도사님의 설교가 나에게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천국에 가면 얼마나 기쁜 줄 아세요? 천국에 가면 하루 종일 예배를 드리게 될꺼예요” 아직 어린아이였던 나는 천국에 가면 그 지루한 예배를 24시간 드린다는 말을 듣고 천국에 가고 싶지 않은 유혹을 받았다. 목사가 되고 그때를 회상하면서 우리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많이 왜곡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하나님이 예배를 지루하라고 주신 것인가? 성경 읽으면 잠 오라고 주신 것인가? 기도는 답답하라고 주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아빌라 테레사의 말대로 기도는 사랑하는 이와의 “사랑의 대화”이다. 성경은 사랑하는 이와의 “러브레터”이며, 예배는 사랑하는 이와의 “만남” 그 자체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이 주신 이 기쁨의 수단들에 대해 오해하고 잘못 경험해 왔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 『신앙감정론』에는 “기쁨의 영성”으로 가득하다. “에드워즈는 ‘의무를 따라’ 걷는 것이 ‘너무 달콤하고 복된’ 나머지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정도로 큰 울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혼자 있을 수 있는 곳을 찾아가서 울어야 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예배, 성경, 기도,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워 울음을 터뜨릴 정도로 기뻤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늘 이 시대에 조나단 에드워즈와 대화를 통해 우리가 찾아야 할 영성이 바로 “기쁨의 영성”일 것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기쁨의 영성”
조나단 에드워즈가 우리에게 남긴 대표적인 설교문 『진노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든 죄인들』로 받는 강한 인상 때문에 많은 이들이 조나단 에드워즈라고 하면 죄에 대한 엄숙함이나 진지함만을 떠올릴지 모른다. 그러나 조나단 에드워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릴 ‘기쁨’을 지속적으로 강조한 신학자요 목회자였다.
우선 에드워즈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은 창조주 하나님과 연합되는 ‘기쁨’이며,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경험하고 아는 ‘기쁨’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인간이 창조된 목적과 일치한다. 어떤 피조물이건 창조의 쓰임새에 맞게 사용될 때 그 빛을 발하고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과의 연합은 인간의 기쁨의 가장 깊은 근원임을 체험적으로 경험했다.
기쁨의 절정: 십자가와 부활
조나단 에드워즈는 고린도전서 13장을 본문으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라는 제하의 설교를 다루었다. 그에게 기독교적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 자신의 생명을 내놓을 때 발견하는 것이고, 그리스도가 보인 십자가의 방식을 온전히 따를 때 찾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장 강력하게 나타나는 장소는 십자가이다. 우선 십자가에서 인간이 경험하는 절실한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무한한 성향, 즉 선의 발산이 끝없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우리 삶의 터전 가운데 임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십자가의 삶이 기쁨이다. 십자가는 원래 고통이요, 죽음이다. 예수님은 억울하게 죽으셨고, 수치스럽게 고난당하셨다. 그 속에서 주님은 침묵하셨다. 십자가는 결코 기쁨이 아니다! 그러나 십자가가 기쁨이 되는 유일한 이유는 그 뒤에 부활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부활을 이야기할 때 관용구처럼 “하나님이 살리시고”라는 말이 나온다. 하나님이 살리실 때의 그 감격, 그 기쁨, 그 환희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신비를 경험하고 믿는 사람만이 침묵 속에서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따라갈 수 있다.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할 때 신앙은 진정한 기쁨의 차원으로 승화가 된다. 십자가가 억울할수록, 십자가가 고통스러울수록, 십자가가 수치스러울수록 부활의 기쁨은 더욱더 찬란해진다.
기쁨의 열매: 예배와 선교
에드워즈가 말한 ‘기쁨의 열매’는 우선 ‘예배’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미국 뉴잉글랜드에서 목회할 당시의 경험에서 직접 발견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할 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 드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머물 때, 완전한 만족을 얻기 때문이다.
또한, 에드워즈의 ‘기쁨의 영성’이 열매로 맺힐 또 하나의 영역은 ‘선교’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 영혼의 깊은 기쁨이 하나로 이어져 있기에 우리는 선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그분을 모르는 이들에게 전한다. 이 영원한 기쁨 때문에 선교사들은 때로 죽음조차도 아름다운 이름으로 부르곤 했다. 이 땅에서의 고난을 맛볼지라도 저 하늘의 영원한 기쁨과 소망을 바라볼 수 있었기에 그들은 선교지에서의 죽음도 껴안을 수 있었다.
마무리하며
오늘날 현대 기독교는 인간의 영혼 깊숙한 곳에 놓여 있는 ‘영적 기쁨’의 자리를 무엇으로 채우고 있는가? 겉으로 보면 신앙적으로 보이는 수많은 종교적 활동, 직분, 봉사, 모임... 거기서 누리는 기쁨의 정체는 무엇인가? 거기에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영광 중 어느 것이 우세한가? 거기에 십자가가 있는가? 거기에 영혼을 살리는 기쁨과 사랑의 기쁨이 있는가?
참된 기쁨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십자가를 따라가는 삶에서 용솟음친다. 이러한 에드워즈의 ‘기쁨’의 영성은 오늘의 현대 기독교에도 매우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기쁨의 영성은 에드워즈가 활동했던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오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역시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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