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귀향길 위에서 다시 묻는 ‘돌아감’의 의미
해마다 민족의 명절인 구정이 다가오면, 우리 사회는 자연스럽게 ‘귀향’이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짐을 든 손보다 마음이 먼저 고향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 그래서 기차역은 사람들로 붐비고, 고속도로에는 길게 늘어선 불빛의 행렬이 이어집니다. 누군가는 설렘으로, 누군가는 의무감으로, 또 누군가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마음으로 고향을 향합니다. 구정의 귀향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무엇을 붙들고 살아왔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돌아감’의 시간입니다.

한국 전통 사회에서 구정은 한 해의 끝이자 새로운 시작을 여는 문턱이었습니다. 농경 사회에서 설은 자연의 순환과 삶의 리듬이 다시 맞물리는 시기였고, 흩어졌던 가족과 친족이 다시 모여 뿌리를 확인하는 날이었습니다. 조상에게 예를 올리고 어른께 인사를 드리며,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새롭게 다지는 절기였습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돌아오는 귀향길에는 “돌아올 곳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위로였다는 점에서 고향은 언제나 기다림과 환대의 이름이었습니다.
그 시절의 귀향 풍경에는 느림이 있었습니다. 험한 산길과 비포장도로를 지나며 하루, 이틀을 걸어야 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조급하지 않았습니다. 고향의 문턱을 넘는 순간, 그 동안의 고단함은 묻지 않아도 풀어졌고, 말보다 밥 한 끼와 따뜻한 아랫목이 먼저였습니다. 그래서 귀향은 성취를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돌아가는 자리였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귀향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고속철과 고속도로가 시간을 단축했고, 스마트폰 하나로 안부를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고향의 모습도 변했고, 예전처럼 모두가 모이기 어려운 가정도 늘어났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귀향은 여전히 설렘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돌아갈 곳 자체가 없는 현실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의 귀향에는 기쁨과 함께 조심스러움과 쓸쓸함이 함께 섞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돌아감’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특정한 장소에 대한 향수라기보다, 나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 성과로 평가받지 않아도 되는 자리, 잠시라도 숨을 고를 수 있는 공간을 향한 그리움일 것입니다. 귀향은 결국 ‘원래의 나’로 돌아가고 싶다는 인간 보편의 마음을 드러냅니다.
이 지점에서 종교를 가진 이들이든 그렇지 않은 이들이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과연 어디로 돌아가고 있는가? 우리의 삶이 끝없이 앞으로만 밀려가는 것처럼 보일 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언제나 ‘돌아갈 자리’를 찾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질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 질문에 하나의 응답을 제시합니다. 성경은 인간의 삶을 나그네의 여정에 비유하며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말합니다. 그것은 현실을 도피하라는 말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더 소중히 살아가게 하는 관점입니다. 언젠가 완전한 쉼과 화해, 회복이 있는 자리로 돌아간다는 소망은 오늘을 책임 있게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이 믿음 안에서 ‘본향’은 종교적 개념을 넘어 인간이 궁극적으로 갈망하는 완전한 안식과 존엄이 회복되는 자리로 이해가 됩니다.
구정의 귀향길은 그래서 특별합니다. 눈에 보이는 고향을 향해 가는 발걸음 위에 눈에 보이지 않는 삶의 방향이 겹쳐집니다. 가족의 얼굴을 떠올리며 차창 밖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무엇을 내려놓고 무엇을 다시 붙들어야 하는지 말입니다.
이번 구정에도 많은 이들이 길 위에 오를 것입니다. 누군가는 오래된 고향집으로, 누군가는 마음의 고향을 찾아, 또 누군가는 잠시 머물 수 있는 쉼의 자리로 향할 것입니다. 그 모든 귀향의 여정 위에 안전과 평안이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잠시 멈추어 서는 이 명절이 각자의 삶에 “돌아갈 곳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귀향은 끝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기 위한 준비입니다. 돌아왔기에 다시 떠날 수 있고, 쉬었기에 다시 걸을 수 있습니다. 구정의 귀향이 우리 모두에게 그런 힘을 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언젠가 각자의 방식으로 꿈꾸는 궁극의 안식, 완전한 쉼의 자리를 향해 오늘을 조금 더 따뜻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2026년 병오년(丙午年), 새초부터 새말까지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오주철 목사(언양영신교회)
계명대교수, 울산노회 노회장(통합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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