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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발행인칼럼

“설교 본문이 바뀐 날,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옥재부 발행인(북울산교회 원로목사)

  얼마 전, 원동 중리교회를 섬기는 한 지인 여전도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사님, 이제 은퇴하셨으니 부담 없이 한번 오셔서 말씀 전해 주세요. 1월 둘째 주가 좋겠습니다.”

  달력에 그 날짜를 표시해 두고, 시골 교회이니 이야기하듯 구수하게 말씀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도하던 중 출애굽기 3장 7~8절 말씀, ‘하나님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준비했다.

  본문은,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계셨고, 그들이 부르짖는 소리를 단순히 한 번 듣고 마신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듣고 계셨다는 사실이었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의 깊이를 아시고, 그들과 함께 공감하고 계셨다. 그리고 그들을 건지시기 위해 모세라는 지도자를 세워, 죄악의 도성 애굽의 폭정에서 건져내시고 가나안을 향해 인도하셨다는 내용이었다.

  금요일에 전도사님이 본문과 제목을 알려 달라고 하셔서 그대로 보내 드렸다.

  주일 아침, 아내와 함께 일찍 길을 나섰다. 전도사님께 드릴 책 몇 권과 성도님들께 나눠 드릴 단행본 몇 권도 챙겼다. 시골의 작은 교회 예배당에 도착하니, 10시 50분쯤 전도사님이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단에 서셨다.

  피아노가 두 대나 있었지만 반주할 사람이 없어 영상 반주를 틀고 찬송을 불렀다. 그런데 20여 명이 모이는 농촌 교회에 울려 퍼지는 그 찬송이 얼마나 은혜로운지, 예배는 이미 마음을 울리며 시작되고 있었다. 준비 찬송을 부른 뒤, 전도사님이 손자 하영이를 불러 사택에 있는 주보를 가져오게 했는데, 아이는 달랑 한 장만 들고 왔다. 그 한 장짜리 주보를 강대상 위에 올려두고 종을 땡 치며 예배가 시작됐다.   

  그런데 교독문 순서에서 문제가 생겼다. 주보에 교독문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전도사님이 당황해하시기에 내가 “그럼 시편 1편으로 합시다”라고 했더니, 그것이 좋겠다며 그대로 진행했다. 그렇게 시편 1편을 교독으로 암송한 뒤, 한 집사님의 기도가 이어졌다. 그 기도는 꾸밈도, 화려한 말도 없었지만 삶에서 길어 올린 듯한 진솔함이 가득한 은혜로운 기도였다. 나는 그 기도를 들으며, 비록 준비는 부족해도 이런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더 은혜가 되는구나, ‘아, 이게 참된 예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성경봉독 시간이 되었다. 전도사님이 성경을 펴며 말했다.

  “창세기 3장 6–7절을 찾으시겠습니다.”

  나는 순간 마음이 멈칫했다. 분명히 내가 알려 준 본문은 출애굽기 3장이었는데, 본문이 바뀐 것이다. “전도사님, 그 본문이 아닙니다”라고 말씀드릴까 하다가,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 교회에는 이 본문이 필요한가 보다. 그냥 이 본문으로 말씀하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강단에 섰다. 그리고 창세기 말씀을 가지고, 죄로 인해 무너진 인간, 사탄의 유혹,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복음을 전했다. 우리가 조금만 방심하면 틈을 타고 들어오는 죄의 현실, 그래서 더욱 말씀 안에, 예배 안에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설교를 마쳤다.

  설교를 마치자 전도사님이 “올 한 해 우리 교회에 꼭 필요한 말씀을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 주셨다”며 오히려 더 감격해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 본문이 바뀌었는데, 그냥 그대로 설교했어.”

  그러자 아내가 박장대소하며 한참을 웃고는 말했다. “당신은 역시 목사야.”

  그 말에 젊은 시절 선배 목사님들이 늘 하시던 말씀이 떠올랐다. “목사는 언제든 설교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

  그날 나는 내가 준비한 원고가 아니라, 변경된 본문이라도 성령님의 인도하심이라 믿고 말씀을 전했다. 그랬더니 설교가 오히려 더 자유롭고, 더 편안했고, 은혜도 더 넘쳤다. 잘해야 한다는 부담, 준비한 것을 꼭 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할 때, 설교는 오히려 더 은혜로워진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격식을 갖추고, 악기가 연주되고, 성가대가 4부로 찬양해야만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피아노 반주자가 없어도, 성가대가 없어도, 준비가 부족해도 상관없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결국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사실을, 시골의 작은 교회, 소박한 예배당에서 나는 다시 한번 또렷이 배웠다. 그리고 나의 남은 날도 성령을 의지하며 살아야겠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찬송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