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집 창문을 열고 경주 남산을 바라보면 넓은 들판이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는 화랑들이 이 남산에서 산행하며 무술과 시와 풍악을 익혔다는 기록이 있으며 그들의 대표적인 훈련지는 포석정 일대와 남산 계곡과 봉우리였다고 한다.

신라 천 년의 역사는 한국 고대사에서 가장 길고 또 문화적으로도 큰 업적을 남긴 시기이다. 기원전 57년에 건국하여 935년 멸망으로 무려 약 992년간이나 존속했다.
초기에는 사로국이라 불리어지고 육부체제 (여섯 씨족이 연합으로 운영)로 운영하다가 2~3세기에는 김씨 왕족이 권력을 장악하여 중앙집권체제로 발전했고, 중기에는 내물 마립간(356~402)으로 김씨 왕위를 세습하다가 지증왕(500~514)이 나라 이름을 신라로 확정하여 마립간이 왕으로 바뀌게 된다. 그후 법흥왕(514~540)이 율령을 반포하고 불교를 국교로 공인(527)하여 국가 체제를 정비했으며, 진흥왕(540~576)때 신라가 전승기를 누렸다.
이때 화랑도를 정비하여 나라를 위해 국방을 튼튼히 했으나, 결국은 935년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 항복하고 고려에 흡수 통일이 되고 말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신라 시대 왕들의 무덤이 경주 전역에 있는데 그 무덤들의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아마도 이 무덤을 만들었던 때 서민의 어깨는 참으로 무거웠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이제는 1,00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남산 앞 들녘을 바라보며 그날의 아픔과 함성을 동시에 본다. 서민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부역에 노역에 허리를 펴지 못했을 것이다.
이처럼 평온하고 고요한 조국의 산하에 먹구름이 드리우는 것 같은 느낌은 나만의 느낌일까? 아니면 꼰대들의 생각일까? 미래를 예측하는 역사가들은 한 시대가 80년이면 수명이 다한다고 진단한다는데, 우리의 조국이 해방이 된 지 금년이 꼭 80년이 되고 건국 77주년이 되었는데 해방과 더불어 건국을 이야기해야 한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경제 대통령 박정희를 잊지 말아야 한다.
일제 치하에서 신음하다가 연합군의 도움으로 해방은 맞이했지만 3년 동안 좌우 이념의 분쟁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지 못한 그 틈에 박헌영이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80만 명의 공산당원들과 소작인들을 선동하여 공산주의 나라를 만들려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으나 그가 당원들을 움직이기 위한 위조지폐를 남발하다가 체포령이 내려지자 장례식 행렬을 꾸며 북한 해주로 도망하게 된다.
이때 나타난 이승만은 남한만이라도 선거를 치러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했고, 당시 200명의 제헌 위원 중 제주도 4.3폭동의 문제로 선거를 치르지 못한 제주도 2개 구를 제외하고 모두 198명이 당선되어 제헌국회가 열렸다. 특별히, 이날 의장인 이승만 대통령의 요청으로 목사 신분으로 당선된 이 윤영 목사가 단상에 올라 대한민국 국회 개원 감사기도했다고 속기록에 기록되어 있다. 그 기도의 전문을 읽어보면 눈물이 난다. 우리나라는 기도로 세워진 나라이다. 이런 나라를 망치는 세력들이 지금 교회를 무너뜨리고 교회와 목회자를 압수수색하고 있다니 가슴이 서늘해진다.
해방이 된 지 80년 건국 77주년이 된 금년에 남산의 앞 들판에 세워진 아파트로 이사를 와서 처음 맞는 황금 들녘이다. 그 들판을 바라보며 만족과 환희를 느끼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아름다운 황금들판을 내년에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지만, 인간의 역사는 굴곡진 사연들을 많이 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렘 3:2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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