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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디모데행전"

“바울의 영적 계승자로서 말씀에 근거한 모범(본)을 보이며, 청년 리더로서 겸손하게 섬기고 격려하는 섬김 리더십의 디모데”

  디모데는 루스드라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는 모세 율법과 예언서에 익숙한 경건한 유대인 여성이었다.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 교육을 받으며(딤후 3:15), 히브리 신앙 속에서 성장했다. 그의 아버지는 헬라인으로, 디모데는 헬라 언어와 문화에도 자연스럽게 익숙했다(행 16:1). 이 이중적 배경은 훗날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다리가 된다.

  이 시기는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유대를 다스리던 때였다(재위 AD 41–44, 헤롯대왕의 손자). 그는 사도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는 등(행 12:1–3) 교회를 심하게 박해했다. AD 44년 헤롯 아그립바 1세가 갑자기 죽자(행 12:23), 유대는 다시 로마의 직할령이 되었다. 이후 로마의 직접 통치가 본격화되었고, 디모데가 성장한 루스드라는 로마의 갈라디아 속주에 속해 있었다.

  AD 47년, 바울의 1차 전도여행이 시작된다(AD 47–49). 바울은 구브로를 거쳐 루스드라에 도착했고(행 14:6–21), 그곳에서 나면서부터 못 걷던 사람을 고치는 기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바울과 바나바를 신으로 숭배하려 했고, 이에 반대한 유대인들의 선동으로 바울은 돌에 맞아 죽을 뻔했다. 그러나 바울은 다시 일어나 루스드라로 들어갔다. 이 사건은 디모데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다. 당시 디모데는 아마 청소년기였을 가능성이 크다. 바울이 떠난 후에도 루스드라 교회는 성장했고, 디모데는 그 공동체 안에서 신앙과 성품으로 인정받는 젊은 제자로 자라났다(행 16:2).

  이후 바울의 2차 전도여행이 시작된다(AD 50–52). 바울은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더베와 루스드라를 다시 방문했고(행 16:1), 그곳 성도들은 디모데에 대해 좋은 증언을 했다. 바울은 디모데를 제자로 택해 전도 여행에 동참하게 했다.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바울은 디모데에게 할례를 베풀었다(행 16:3). 디모데는 바울과 실라와 함께 여러 도시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고, 예루살렘 공의회(AD 49)의 결정을 각 교회에 전달했다(행 16:4–5).

  AD 51년경, 바울은 드로아에서 ‘마케도니아 사람’의 환상을 보았다(행 16:9–10). 이 부름을 통해 복음은 처음으로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다. 이때 디모데는 바울, 실라, 누가와 함께 본격적인 바울 전도팀의 일원이 되었다.

  그들은 빌립보에 도착했고, 자주 장사 루디아의 회심과 간수의 회심을 통해 유럽 최초의 교회가 세워졌다(행 16:12–40). 디모데는 바울과 함께 신자들을 양육하며 초기 공동체를 돌봤다. 이후 데살로니가로 이동했으나, 유대인들의 폭동으로 인해 도시를 떠나야 했다(행 17:1–9). 베뢰아에서도 사역했지만,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쫓아와 바울을 위협하자 바울은 아덴으로 피신했다(행 17:10–15). 디모데와 실라는 잠시 남아 교회를 돌보다가 이후 바울과 다시 합류했다.

  아덴에서 재회한 뒤, 바울은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다시 보내 박해 가운데 있는 신자들을 위로하고 교회를 견고하게 하게 했다(살전 3:1–2). 디모데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상황을 자세히 바울에게 보고했고, 이 보고는 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를 집필하는 데 핵심 자료가 되었다. 이 편지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의 이름으로 공동 서명되어 있다(살전 1:1). 이 시점에서 디모데는 단순한 조수가 아니라, 공동 저자이자 목회 동역자로 자리 잡고 있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AD 53–57년에 걸쳐 진행되었다. AD 54년 이후 로마 황제는 네로였고(재위 AD 54–68), 이 전도여행의 핵심 거점은 에베소였다(행 19:1). 바울은 에베소 회당에서 3개월, 두란노 서원에서 2년 동안 가르쳤고, 이로 인해 온 아시아에 복음이 퍼졌다(행 19:9–10). 이 기간 디모데는 바울의 사도적 권위를 위임받아 교회의 구조와 직분, 가르침과 공적 판단을 담당하는 중요한 인물로 성장했다.

  그러나 바울과 디모데가 에베소 사역에 전력투구하는 동안, 바다 건너 고린도 교회는 분열과 부도덕으로 큰 혼란에 빠졌다. 이에 바울은 디모데를 고린도로 파송했다(고전 4:17; 16:10–11). 디모데는 복음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담대히 나섰으나, 그의 방문이 고린도 교회를 즉각적으로 안정시키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AD 57년, 바울은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후 성전에서 체포되었고(행 21:33), 이후 가이사랴 감옥에 이송되었다(행 23:23). 바울은 황제에게 상소하여 AD 60년경 로마로 압송되었고, 약 2년간 가택연금 상태로 머물렀다가 풀려난 것으로 보인다. 이 시기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에 남아 사역하고 있었으며, 거짓 교훈을 막고 교회의 질서를 세우는 책임을 맡았다(딤전 1:3). 

  바울이 디모데전서를 기록한 시기는 AD 62–64년경으로 보이며, 이 편지는 기도, 감독과 집사의 자격, 참과부의 돌봄, 재물과 경건의 균형 등 교회의 구체적 운영 지침을 담은 목회 서신이다. 상업과 우상이 난무하던 에베소에서, 디모데는 복음을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 3:15)로 세우기 위해 분투했다.

  AD 64년, 로마 대화재가 발생했고, 네로는 그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리며 대규모 박해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바울은 다시 체포되어 로마 감옥에 갇혔고(AD 64–67), 이 두 번째 투옥 기간 중 마지막 서신인 디모데후서를 기록했다. 바울은 AD 67년경 네로의 박해 아래 로마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바울이 순교한 뒤, 디모데는 계속 에베소 지역 교회를 돌보며 목회했다. 히브리서 13:23은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고 기록하는데, 이는 디모데 역시 한때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음을 암시한다. 후대 전승에 따르면, 디모데는 폭력과 음행을 동반한 우상 행렬을 막다가 AD 80년경 돌에 맞아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디모데의 순교 시기를 AD 97년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그렇게 볼 경우 사도 요한이 AD 98년경 에베소에서 자연사한 것으로 전해지는 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동일한 에베소 지역에서 두 사람이 장기간 함께 사역했다는 전승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디모데가 AD 80년경 순교하고 이후 지도력이 사도 요한에게로 이어졌다고 보는 해석이 교회사적으로 더 설득력 있다.

  결론적으로, 디모데는 루스드라 길목에서 돌에 맞아 쓰러진 바울을 바라보던 소년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그는 바울의 사역을 이어받아 에베소 교회의 감독으로 섰다. 그리고 그 불은 다시 사도 요한에게, 곧 80년대 이후 90년대의 시대를 향해 이어졌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디모데와 같은 사역자를 부르신다. 지금도 우리를 부르신다.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디모데후서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