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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언젠가부터 예배 시간에 주기도문을 낭송하는 교회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설령 주기도문을 낭송하더라도, 마지막 문장은 예전보다 짧아졌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오랫동안 귀에 익었던 이 문장에서 ‘대개’라는 단어가 사라진 것이다. 왜 그럴까. 단순한 문체 정리일까, 아니면 의미 없는 군더더기였을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했을 이 기도문에서 한 단어가 빠진 이유가 궁금해졌고, 그 궁금증은 조사로 이어졌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대개’는 대개(大槪) ‘대체로’, ‘대략’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 의미로 읽으면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있다”는 표현은 어색해진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하나님께 있는 것은 대체로 그렇지만, 예외도 있을 수 있다는 뉘앙스를 주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어떤 경우에는 인간에게도 권세가 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오해될 소지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일부에서는 주기도문을 현대어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이 단어를 부정확한 표현으로 판단하고 삭제했다.

  그러나 주기도문에 쓰인 ‘대개’는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대개(大槪)가 아니다. 이 말은 한자어 대개(對蓋)에서 온 고전적 번역체 표현이다. 그 의미는 ‘참으로’, ‘과연’, 또는 ‘왜냐하면 바로 그렇기 때문이다’에 가깝다. 즉 ‘대개’는 의미를 흐리는 말이 아니라, 앞선 모든 기도를 하나의 논리로 묶는 연결어다. 영어의 ‘for’나 ‘because’처럼, 앞의 요청과 뒤의 근거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분명히 해두고 싶은 점이 있다. 이 글은 어떤 교단이나 특정 번역을 비판하려는 글이 아니다. 주기도문을 둘러싼 교리 논쟁을 하려는 글도 아니다. 나는 신학자도 아니고, 성경을 깊이 공부한 사람도 아니다. 다만 한자어를 사용하면서 한자를 병기하지 않고 발음만 남겨두었을 때, 오히려 의미 전달이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대개’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같은 발음이지만 전혀 다른 뜻을 가진 한자어가 혼동을 낳은 것이다.

  주기도문의 구조를 살펴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해진다. 기도는 먼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으로 시작한다. 이어 이름, 나라, 뜻이라는 공적 질서에 대한 청원이 제시된다. 그다음에야 일용할 양식, 죄의 사함, 악에서의 구원이라는 인간의 구체적인 필요가 언급된다. 여기까지는 모두 요청의 언어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논리적 긴장이 생긴다. 하나님의 뜻이 완전하다면, 왜 인간은 이토록 많은 것을 구하는가. 우리가 구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이미 알고 계시지 않은가. 주기도문은 이 질문을 회피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을 마지막 문장에서 제시한다.

  “대개(對蓋)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찬양이 아니다. 앞서 드린 모든 청원의 근거이자 결론이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고 기도한 뒤에도 결과를 내려놓을 수 있는 이유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인간에게 있지 않고 영원히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기도는 결국 인간의 요구를 관철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평안을 찾는 행위다.

  만약 이 문장에서 ‘대개’를 제거한다면 어떻게 될까. 문장은 남지만 논리는 사라진다. 기도는 요청으로 시작해 요청으로 끝나고, 기도하는 사람의 태도는 전환되지 않는다. 대개(對蓋)는 장식어가 아니라 접속사이며, 요구를 신뢰로 바꾸는 결정적인 언어다.

  한글 전용 시대에 성경을 읽는 것은 분명 중요한 진전이다. 한자를 모르는 세대에게 성경의 문이 열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변화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자어를 남겨두었다면 그 뜻을 밝혀야 하고, 그 뜻을 설명할 생각이 없다면 아예 순한글로 바꾸는 것이 옳다. 의미를 오해한 채 단어를 삭제하는 것은 이해를 돕는 개편이 아니라 의미를 축소하는 편집이다. 번역은 단순히 말을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의미를 온전히 전달해야 할 책임을 동반한다.

  그래서 ‘대개’라는 단어는 그대로 두어야 한다. 그것이 어색하다면 “진실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라고 풀어 써서라도 뜻을 살려야 한다. 단어를 지워버리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이 문장은 덧붙은 말이 아니다. 주기도문 전체를 떠받치는 마지막 논리이며, 기도하는 사람이 끝내 도달해야 할 자리의 선언이다. 그래서 이 문장에서 ‘대개’는 빠져서는 안 된다. 그 한 단어가 기도를 논리적으로 완성시키기 때문이다.

기도 방법이 많지만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은 기도의 온전한 양식이다. 주기도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다. 주기도문으로 기도하기는, 말 그대로 주기도문의 순서에 따라 기도하는 방법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면 내가 누구에게 기도하는지 분명해진다 _안관현_책소개에서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1:36)

이한우 박사(1516교회)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