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계/교계일반

"결산의 달 _ 감사로 채워라"

  해운대는 내가 어렸을 때 놀이터였다. 너무 많이 물에서 놀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천국에 갈번한 적도 있었다. 현재 부산 극동방송국이 있는 자리 근처에서 거북이가 해변에 올라오면 잡아서 축복하고(?) 바다로 돌려보내 주기도 했다. 지금 내 어릴 적 놀이터에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엄청 몰려온다. 해운대만 그런가? 부산 자갈치와 깡통시장은 또 어떤가? 

  전 세계가 감탄하는 곳은 내가 있는 곳에서 겨우 두어 시간 이내의 거리에 있다. 버스 환승 없이 갈 수 있는 곳도 많다. 그런데 먼 곳의 사람들은 보고 감탄하는데 나는 가까이에 있는 것에 별로 감격이 뜸하다.

  APEC으로 경주의 인기가 한층 더 올라갔다.

서울에서도 휴가를 얻어 많은 사람들이 경주에 내려온다. 천마총에 있는 신라의 왕관, 금제 허리띠 등 많은 장식품들을 보고 감탄을 한다. 그런데 안내원의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라!

  이 장식품은 진품이 아니란다. 그럼 진품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서울 용산에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다. 서울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진품을 두고 진품 아닌 것을 보기 위해 경주까지 내려온 것이다. 

  멀리 있는 것이 아름답게 보이는 법이다. 그래서 시선을 자꾸 먼 미래에 두고 달리다 보니 현재의 삶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놓치기 쉽다. 그런데 가까이 있는 것에 감사와 감격이 없으면 하나님의 지갑은 닫힌다.

  로마서 끝 말미에 감사로 문안하라는 바울의 고백이 22번이나 나오는 것을 보면 사도바울은 감사의 사도라 할 수 있다. 12월에 감탄하고, 또 감사하면 하나님의 기적이 새해에 일어난다.

  톨스토이 말년에 쓴 단편소설 <세 가지 질문>이란 책이 있다. 작가는 지금이 가장 소중하고, 지금 하고 일이 가장 소중하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이 가장 소중하니, 지금 하는 일과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고 교훈한다. 무슨 말인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을 사랑하는 말이다. 

  왜 사람들은 <신데렐라> 이야기에 열광하고, <콩쥐팥쥐> 스토리에 흥분하는가? 결핍에서 건짐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짠한 것이다.

감사와 감탄을 이끌어 내는 것은 “풍성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부족과 모자람”에서 오히려 넘치는 감사가 나온다.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감사는 창조되고 솟아오르는 것이다.

  모든 사물과 사람은 감사의 눈빛과 말과 마음에 영향을 받는다. 양자역학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한다. 소위 판때기 실험이다.

  판때기에 구멍을 내고 빛을 비추면 중간 슬릿을 통과하여 전방에 있는 스크린판에 빛을 비추게 하는 실험이다. 그런데 빛을 분명히 두 개의 구멍에 비추었는데 스크린에는 두 개 이상의 빛으로 분산된다는 것이다. 

즉, 입자로 출발한 빛이 슬릿을 통과하여 스크린에 도착할때는 파동으로 변한 것이다. 빛의 이중성이다. 신비롭다. 그런데 이것을 관찰하기 위해 카메라를 설치면 두 개의 빛이 스크린에 그냥 두 개만 생긴다는 것이다. 입자도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다.

  우리의 감사는 물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친다. 2000년도에 유행했던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란 책에서 감사를 표시한 물은 맛있는 육각수로 유지가 되지만 불평과 불만족을 표기한 물은 마시기 어려운 물이 된다는 것이다. 물이 사람의 언어에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몸은 70% 이상이 물로 구성되어 있다. 감사는 하나님의 지성소의 문을 열기도 하지만 우리 몸의 강력한 강건함을 회복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12월의 감사는 온 열방을 낙심과 분열에서 아름다움으로 복원시킬 것이다. 무너진 가정과 교회를 다시 일으킬 것이다. 

  감사하면 치료가 일어난다. 

  감사는 슬픔을 이긴다. 

  감사는 퇴보를 진전으로 이끈다. 

  감사하면 사람도 모인다. 

  결산의 때는 무조건 감사다! 

  할렐루야 아멘

 

      최성만 목사(오후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