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계/교계일반

“에베소, 우상의 도시에서 말씀의 도시로”

“셀수스 도서관(터키 서부 이즈미르 주 셀주크 시 근처에 위치한 아나톨리아 에베소에 있는 고대 로마 건물이다.)(사진_위키백과)

1세기 전반, 에베소는 소아시아의 중심 도시였다. 거대한 아르테미스 신전이 도시의 상징으로 서 있었고, 그 신전은 단순한 종교 건물이 아니라 장인과 상인, 신전 사제들이 얽힌 거대한 시장이었다. 신전의 제사와 공예품, 은제 신상 제작과 관광, 점술과 축제가 모두 도시의 삶을 지배했다. 이런 사회 구조 속에서 복음이 전파될 때, 단순히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와 질서가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바울이 처음 에베소에 발을 디딘 것은 주 후 52년경, 그의 2차 전도 여행의 말기였다. 그는 고린도에서 함께 사역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와 함께 이 도시에 도착했다(행 18:1819).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야 했기 때문에 오래 머물지 못했으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에베소에 남겨 두고 떠났고, 이 부부가 이후 에베소 교회의 첫 토대를 세웠다.

  참고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원래 로마에서 살던 유대인 부부였다. 로마 황제 글라우디오(재위: AD 41-54)가 AD 49년경 “모든 유대인을 로마에서 추방하라”고 명령했을 때(행 18:2), 이들은 로마를 떠나 고린도로 이주했으며, 고린도에서 바울을 만나 함께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며 복음 동역자가 되었다. 글라우디오가 AD 54년에 사망하면서 추방령이 자동으로 해제되자,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에서 로마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으나 바울을 사역을 동역한 후, AD 56년에 다시 로마로 귀환했다.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에서 AD 52~55년까지 사역을 하던 중, 사도 바울은 AD 54년 에베소에 도착했다. 사도 바울의 3차 전도 여행(AD 53–57년) 때이며, 바울은 약 2년 3개월 동안 에베소에 장기 체류했다. 세 사람은 회당에서 석 달 동안 복음을 전했으나, 반대가 심해지자 제자들을 이끌고 ‘두란노 서원’이라는 강의실로 옮겨갔다. 그곳에서 바울은 매일 사람들을 가르쳤고, 그 결과 “아시아에 사는 모든 사람이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할 만큼 복음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행 19:9-10)

  이 시기의 바울 사역에는 놀라운 표적도 뒤따랐다. 그의 손수건과 앞치마를 병자에게 얹으면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갔다. 이러한 능력의 역사는 도시의 마술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스게와의 일곱 아들이 예수의 이름을 흉내 내다가 귀신에게 공격당하는 사건이 일어나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술책을 모아 불태웠다. 그 값이 5만 드라크마에 달했다는 기록은 도시 전체가 우상과 주술의 경계를 끊어낸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복음의 능력이 강하게 드러날수록 경제적 이해관계와의 충돌도 커졌다. 아르테미스 신전의 은제 신상 제작으로 생계를 유지하던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매출 급감을 이유로 장인들을 선동했다. 데메드리오는 “이 바울이라는 자가 사람들을 설득해 신들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한다”고 외쳤다. 이 말은 종교의 문제를 넘어 도시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었다. 분노한 군중은 대극장으로 몰려 “에베소 사람의 아르테미스가 위대하다”를 외쳤다. 그 대극장은 약 2만 4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시설이었다. 로마 당국의 서기장이 개입하여 간신히 사태를 진정시켰고, 바울은 폭동 직후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니아(빌립보)로 향했다.

  이처럼 바울의 에베소 체류는 약 2년 반 정도(AD 54–56년경) 지속되었다. 바울은 그 기간 동안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와 긴밀히 협력하여 교회의 토대를 세웠다(고전 16:19). 이 시기의 에베소는 바울 사역의 절정기이자 아시아 복음 확산의 출발점이었다.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 마게도니아(빌립보/데살로니가)와 아가야(고린도) 지방을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길에, 바울은 에베소에서 50km 떨어진 밀레도로 장로들을 불러 마지막 고별 설교를 했다(행 20:17–38). 

  이후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에 남겨 교회의 질서를 바로잡게 했다(딤전 1:3). 거짓 교사와 족보 이야기, 신화가 교회를 혼란스럽게 했기 때문이다. 디모데는 젊지만 신실한 목회자로 교회를 세웠고, 두기고가 바울의 신뢰를 받아 에베소에 파견되어 디모데를 도왔다(딤후 4:12).

  세월이 흘러 1세기 말, 에베소는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등장한다. 일곱 교회 중 첫 번째 교회로 언급되며(계 2:1–7), 주님은 그들의 수고와 인내, 거짓 사도에 대한 분별을 칭찬하면서도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하셨다. 

  이 무렵의 전승에 따르면, 사도 요한은 말년에 에베소에서 목회했다. 2세기 교부 이레나이오는 “요한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기록했다”고 증언했고, 에베소 주교 폴리크라테스는 “주님의 가슴에 기대었던 요한이 에베소에서 잠들었다”고 기록했다. 교회사학자 유세비오 역시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었다가 에베소로 돌아와 생애를 마쳤다고 전했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요한복음과 요한계시록의 저자 문제에 논의가 있지만, “요한이 에베소에서 목회하며 생애를 마쳤다”는 전승은 2세기 말부터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결국 에베소는 신전과 우상의 도시에서 말씀의 도시로 변화한 상징적 공간이었다. 바울이 복음의 기초를 놓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현지 교회를 세웠으며, 디모데가 교회의 질서를 다졌고, 요한이 말년에 그 교회를 돌보았다. 

  이 세 세대의 사도적 사역이 겹친 도시, 그곳이 바로 복음이 우상 문명과 맞서 승리한 현장, 에베소였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에베소서 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