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대를 휘감아 흐르는 물결 속에서 살아간다. 그렇기 때문에 ‘아차’ 하는 순간 쓸려 떠내려간다. 성경은 이것을 경고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흘러 떠내려가지 않을 수 있을까요?
첫째, 말씀에 더욱 유념해야 한다.
성경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떠내려가지 않게 하라고 권한다. 세상의 흐름에 떠내려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가 믿는바 진리에 의지적인 강한 에너지를 투입해야 한다. 오늘날 세속의 흐름은 너무 거세기에 일주일에 한 번 하는 것으로는 견디기 어렵다. 매일 수시로 하는 리마인드 루틴이 필요하다. 다니엘의 시대도 비슷했다. 물살이 거센 시대였다. 금 신상에게 절할 것을 강요했고, 기도를 금했다. 여기에 대한 다니엘의 대처법이 무엇이었나? 그것은 하루 3번씩 기도하는 ‘루틴’이었다. 다니엘은 이 루틴을 10대부터 시작해서 90이 넘을 때까지 이 땅에서의 시간을 마칠 때까지 계속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사자 굴에 들어가도 멈추지 않았다.
둘째, 올바른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역사를 영적인 눈으로 주목하여 보라. 뉴스를 볼 때도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볼 때도, 저것은 어디에서부터 나온 거지?라고 물어야 한다. 드러나는 사건을 보고 판단하지 말라. 그 근원에 있는 세계관을 분별하고, 그것을 성경적 관점에서 비판하고 이해하며, 육신의 눈이 아닌 영적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세상에 하나님이 어디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세상에 하나님이 어디 없습니까?”라고 대답하셨다는 어느 선교사님처럼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우리는 다른 것을 보게 된다. 이 ‘바라보는 관점’이 바로 ‘세계관’이다. 단순한 지식으로서의 이해가 아니라 영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이 말하는 것에 휩쓸려 갈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 시대의 흐름을 거슬러야 한다.
깊은 이해와 통찰력을 구하라. 우리가 믿는 진리를 ‘그건 종교야!’라고 치부하려는 흐름에 저항하라. 우리가 믿는 진리는 그것이 종교든 과학이든 ‘사실’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니다. 우리를 속이는 아편일 뿐이다.
또 인간의 욕구를 충족하는 것을 선이라 칭송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 떠내려가지 말라.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하는 존재이지 욕구 충족을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다. 권위와 질서 속에 거하라. 성경은 부모를 존경하라고 명한다. 권위가 무너질 때 우리는 해방이 아니라 눈치와 불안이라는 새로운 속박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분노를 조장하는 사회적 흐름에 저항하라. 크리스천은 ‘사랑의 사람’이지 ‘분노의 사람’이 아니다. 분노는 사회를 파괴할 뿐 변혁하지 못한다. 선동과 선전에 속지 말라. 아차! 하는 순간 떠내려간다. 성령 안에서 늘 깨어 있기를 축복한다!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전10:4~5)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시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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