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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생명의 물"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그것은 생명의 물에 대한 환상입니다. 그 환상을 가만히 살펴보니 성전 문지방 밑에서부터 물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환상을 보여준 후에 천사는 에스겔에게 질문합니다.

  “인자야 네가 이것을 보았느냐?”(겔47:6)라고 묻습니다. 이 환상이 이해가 되느냐, 왜 이 곳에 성전이 있는지 알겠느냐? 라고 묻고 계십니다. 성전이 있는 이유는 생명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전된 우리의 삶도 생명이 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먼저, 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성령이 흘러야 합니다(1절). 지금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내려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고 다시 살아나는 일들이 경험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요7:39) 성전 문지방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은 성령님입니다. 이 성령이 흘러가는 곳마다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납니다.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의 삶에 생명의 물로 흘러가기를 소망합니다. 

  두 번째, 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살리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1절). 생명의 물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시작됩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오늘날 교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살리고 변화시키며 풍성하게 하는 시작이 교회입니다.  살리는 역사가 교회에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각각의 교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교회라면, 생명의 물이 흐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 생명의 물은 살리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이 물이 흘러 바다를 살리며, 생물이 살게 되고, 산업이 생성되고 있습니다. 땅이 살고, 과일이 풍성하며, 잎사귀는 약재료가 됩니다.(겔47:8~12절)

  다시 말해서, 성전 문지방 밑에서 흘러나온 생명의 물이 지나가는 곳은 살아났습니다. 우리를 통하여, 모든 일터와 가정이, 교회와 지역이 생명으로 회복되고,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생명이 있는 교회는 물이 충만하여 흘러가야 합니다. 물이라는 성질은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물은 흐를 때 살아 있는 물이 되고 생명을 살리는 물이 됩니다. 그러나 물이 흐르지 않고 고여 있다면, 썩고 냄새나는 오염물이 되어집니다. 

  이스라엘에 두 개의 큰 호수가 있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계속 흐르며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이 물의 순환이 끊임없이 이루어져 항상 생명이 약동하는 맑은 호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해 바다는 물을 받기만 하지 흘러 보내지 못합니다. 그대로 담고 있다가 그냥 뜨거운 태양 빛에 의해 증발해 버리기 때문에 물의 염도가 높아져 어떤 생물도 살 수 없는 죽음의 바다가 되었습니다. 받아들이고 내어주기를 잘하는 갈릴리 바다는 살아있는 바다요, 받아들이기만 하고 내어줄 줄 모르는 사해는 죽음의 바다가 되어버렸습니다. 

  물은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서 모양이 달라지지만 사람은 어떤 사람을 사귀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만난 우리는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령님을 그릇에 담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그릇이 차고 넘쳐서 흘러 흘러서 각 가정을, 일터와 교회를, 이 지역 사회를 살리는 데 쓰임 받는 역사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4:7)

김종국 목사(이화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