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학 시절, 저는 스스로를 늘 ‘임시 체류자’(παρϵπιˊδημος)임을 절감하며 살았습니다. 미국에 정착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체류 기간은 10년 가까이 길어졌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돌아갈 길이 막막해질 때 마음은 더욱 힘들어졌습니다. 불확실함 속에 하루하루를 버티던 그때, 제 삶의 중심을 잡아주고 기대 살게 했던 성경책이 바로 베드로전서였습니다.
M.Div 과정을 시작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저의 은사이신 Dr. Murray J. Harris 교수의 베드로전서 주해 수업을 들은 것은 제 연구에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이미 대학 시절부터 10년 가까이 성경을 연구해 왔지만, 바울 전공자인 해리스 교수의 베드로 신학에 대한 가르침은 그야말로 놀라웠습니다. 그때 저는 “전문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를 깨달았고, 이후 베드로전서에 완전히 사로잡혔습니다.
바울을 공부하고 학위를 받은 후 한국에 돌아와서 처음 책 전체를 강해한 책도 베드로전서였고, 그 이후에도 두세 번 더 설교했습니다. 그러고 보면 베드로전서를 제대로 공부한 지 30년이 넘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깊어지고 정리된 통찰을 이제는 나누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작년 8월에 원고를 탈고했습니다. 분량이 거의 600쪽에 달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상·하권으로 나누어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의 신학적 기반이 되는 1:1~2:10까지를 다룬 상권『뿌리 깊이 하나님나라_거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임시 체류자들』을 펴냈고, 각론 편이라고 할 수 있는 2:11~5:14까지를 다룬 하권『열매 가득 하나님나라-지금 이곳에서 남다르게 사는 임시 체류자들』가 후속작으로 지난 달 출간되었습니다. 상권이 261쪽, 하권이 444쪽으로 합쳐서 705쪽이 된 것은 베드로전서가 가진 신학적 밀도 때문입니다.
많은 학자들이 바울 신학을 적극적으로 논의하는 것에 비해, 베드로 신학은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남긴 문헌이 적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베드로 사도가 남긴 글과 사복음서의 행적 기록, 사도행전의 내용은 베드로 사도의 사역과 사상을 기억하고 재구성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런 면에서 베드로전서는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처음 공부할 때부터 이 서신이 담은 놀라운 통찰에 매료되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5장 2절의 “여러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양 떼를 먹이십시오”에 깊이 꽂혔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주님께 “내 양을 사랑하면, 내 양 떼를 먹이라”는 말씀을 들었던 노 사도가 후배들에게 같은 단어를 썼다는 생각에, 이 구절은 제 목회 철학의 기초를 놓아주었습니다. 유학 중 해리스 교수와 더 자세히 공부하면서, 베드로 신학의 정수가 1:1~2:10, 특히 1:3~7에 집중되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에 기초하여 서신 전체에 흐르고 있는 베드로 사도의 감격과 긴장감도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상권은 고난 가운데 흩어진 성도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하나님나라에 깊이 뿌리 내리는 정체성을 다룹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잠시 머무는 임시 체류자이지만, 동시에 산 소망 안에 부름받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세상의 시련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뿌리가 깊어야 합니다. 반면, 하권은 그 정체성에 기초하여 가정, 일터, 사회 등 삶의 모든 관계 속에서 하나님나라 백성이 맺어야 할 구체적인 열매를 펼쳐 보여줍니다.
흥미로운 것은, 베드로전서에는 ‘하나님나라’라는 단어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께 직접 배우고, 그 통치 안에서 살아본 사도에게서 흘러나온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하나님나라 신학 그 자체입니다. 베드로전서 한 권만 제대로 공부해도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가정과 사회 윤리에 이르기까지 복합적인 신학 요소가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음을 만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책입니다.
이 책은 긴 시간에 걸친 연구와 여러 번의 강해를 통해 적지 않은 성도들을 “먹일 수” 있었던 결과물입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먼저 이 영적인 양식(2:2, “신령한 젖”)을 갈망하고 먹을 수 있었던 사람은 바로 저였습니다.
이번에 두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으며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본래의 복음, 예수가 가르치고 초대교회가 따랐던 그 신선한 메시지로 돌아가기를, 그리고 그것을 오늘 우리의 자리에서 다시 읽어내는 작업이 더욱 활발해지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나라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상권), 이 땅에서 열매를 가득 맺는 삶(하권)—이것이 초대교회가 걸었던 길이며, 오늘의 교회가 회복해야 할 본질입니다. 제 오랜 배움과 작은 통찰이 그 여정에 도움이 되기를 조용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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