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사 사역 때 일이다. 어느 주일 오후 주일학교의 한 남자교사가 자기반 학생들을 데리고 야외에 갔다가 발목이 접질러져 복음병원에 입원을 하게되어 심방을 갔다.
당시에 나는 주일학교 담당 전도사였고 그 남교사는 나와 동연배인 교사였다. 내가 남교사를 심방하고 있을 때 한 젊은 환자가 방문하였다. 남교사는 나를 소개하였고, 젊은 환자는 대뜸 내게 질문을 했다. “왜 하나님이 선악과를 만들어서 사람이 죄를 짓게 했느냐?“는 것이었다. 이 질문에 남교사가 선듯 나서면서 자기가 알고있는 성경지식을 동원하여 설명했다. 그러나 이 젊은 환자는 그냥 못 들은척 했다.
이제 내가 답변을 해야했다. 잠깐 생각한 후에 내가 그 젊은 환자에게 질문 했다. “가정에는 가훈이 있고, 학교에는 교훈이 있고, 나라에는 헌법이 있는데, 왜 있습니까?” 이 질문에 그는 반론하지 않고 무릎을 치며 “예, 잘 알았습니다.”라고 하고 병실을 나갔다. 그는 선악과의 존재 이유를 깨달은 것 같았다. 나는 아직까지도 이 일을 생각하면 미스테리다.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만드셨는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보호하고 보존하기 위해서다. 즉 “보호 보존의 법적장치”라고 할 수있다. 사도바울은 율법(법)의 기능에 대하여 증언해 준다.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 하지 아니한 자.....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리는 자를 위함이니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딤전 1:9-11)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교육헌장”을 주셨다.(신6:4-9) 그리고 그것을 손목과 미간에 표를 삼고 언제든지 자녀들에게 가르치게 하셨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토라(Torah)를 생명처럼 지키고 읽으며 암송하고 있다. 토라는 ‘길을 지시하다.’ 또는 ‘가리킨다’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토라는 모세오경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길을 잃고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하나님은 주의 종들을 통하여 율법책을 낭독하여 듣게 하였다. 백성들이 율법을 들을 때 심령에 부흥이 일어났다. 에스라를 통해서 일어난 수문앞 부흥도 그러하다.(느8장)
그러면 “하나님의 법”인 “율법” 즉 “토라”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이미 언급한 여호수아 1장8절이 해답이다.
“이 율법책의 말씀을 늘 읽고 밤낮으로 그것을 공부하여 이 율법책에 씌어진 대로 모든 것을 “성심껏 실천하여라 그리하면 네가 가는 길이 순조로울것이며 네가 성공 할 것이다.”(수1:8, 표준새번역)
위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오늘 개인, 가정, 교회에 부흥이 일어나지 않는 원인이 무엇인가를 진단할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추리해 보면 성경을 바르게 읽지 않았다든지, 성경을 읽고도 바르게 공부를 하지 않았다든지, 성경을 바르게 읽고 바르게 공부는 했으나 삶에 올바른 실천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복음서에 나타난 부자청년과 예수님의 대화에서 그것을 증명해 낼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다 지켰다고 자부하는 멋진 젊은 청년에게 예수님은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네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 팔아서 나누어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를 따르라”(눅18:22)고 하셨다. 이 말을 들은 부자 관리는 “큰 부자 이므로 심히 근심에 빠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산상수훈 결론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 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 가리라”(마7:21-23)
아버지의 뜻이 기준이다. 말씀이다. 세상의 법은 수시로 변한다. 법이 없는 무법천지의 시대가 되었다. 시편의 시인은 이런 시대에 대해서 탄식하고 있다.
“그들이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니이다.”(시119:126)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신 말씀을 다시 들을 필요가 있다.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라”
사도 베드로의 증언이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자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1:24-25)

이제 그리스도인이 “토라의 빛”을 발할 때이다. 그리스도인들이여 “토라의 횃불”을 높이 들자.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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