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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생활 속 신앙이야기

삼백이하 맛세이 금지!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4:6)(예 디자인_그림제공)

  1980년대 당구장에는 어느 집이든 벽에 세로로 쓰인 문구가 있었다. “삼백이하 맛세이 금지!” 당구를 조금이라도 쳐본 사람이라면 무슨 말인지 다 알 것이다. 삼백은 당구 점수를 뜻한다. 300점은 아마추어와 고수의 경계쯤 되는 수준이다. 맛세이(massé)란 큐대를 거의 세워 공을 찍어치듯 휘감아 내는 기술인데, 숙련되지 않은 사람이 시도하면 공이 제멋대로 튀고 당구대의 천이 찢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초보자일수록 괜히 폼을 부리려다 구경꾼의 비웃음을 사고, 주인에게 핀잔을 듣곤 했다. 


  나는 한때 몸과 마음이 지쳐 교회에서 진행하는 내적 치유 모임에 들어간 적이 있다. 11주 동안 토요일마다 모이는 제법 큰 모임이었고, 1년 후에는 팀장을 맡게 되었다. 중독과 강박에 시달리는 사람, 가족의 강요로 억지로 온 사람, 자신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믿는 사람... 다양하고도 진지한 얼굴들이 매주 마주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면의 상처와 가시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런데 함께 훈련을 받은 후 스탭이 된 이들 가운데는 누군가를 가르치려 드는 이들이 간혹 있었다. 자기만의 좁은 신념을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내놓는 모습은 마치 당구 300 이하가 맛세이를 시도하는 격이었다. 선의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듣는 이의 마음에 상처를 남기곤 했다. 


  내가 맡은 역할은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배우고 버티는 일이었다. 기본기에 집중하고, 성실히 반복하는 일. 그것이 내적 치유 공동체를 안전하게 지키는 길이었다. 그렇게 상·하반기마다 다섯 번을 이끌고 나서, 마침내 다른 분이 내 역할을 이어받았다. 


  그 무렵 영국에서 온 한 목사님이 내게 기도해주셨던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앞으로 많은 아픈 사람들이 당신에게 몰려올 것입니다. 심한 중독에 시달리거나 영혼이 상처 입은 이들이 올 것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많은 외국인들이 당신에게 오거나 당신이 외국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외국어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저 당신은 남들에게 되로 흔들어 차고 넘치게 주세요. 그러면 하나님도 당신에게 그렇게 해주실 것입니다.” 현실 속에서 까맣게 잊고 지내던 이 말씀이 요즘 다시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때 당구장 문구처럼 가볍게 웃었던 경구가, 이제는 내 삶의 방향을 지탱하는 묵직한 언어로 다가온다.


  또 한마디, “돼지꼬리 대통 속에 삼 년을 넣어봐라.” 타고난 성질과 모습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고약한 말 같지만, 나는 역설적인 위로를 읽는다. 나의 성정과 형질이 잘 변하지 않아도, 그분은 그 형질에 맞는 미션을 주실 것이고, 그 모양이 오히려 장점이 되는 현장을 열어주실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내 태도와 모습이 불편하다. 그래도 이제는 사랑하기로 했다.


  잠언도 남들 일에 함부로 간섭하지 말 것을 일깨워 준다.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에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사람과 같으니라”(잠언 26:17). 내 실력과 내공이 부족할 때는 괜히 남을 고치려 들지 말고, 먼저 나를 돌아보라는 가르침이다.


  성경에는 실제 사례도 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도망갈 때, 베냐민 사람 시므이가 따라오며 돌을 던지고 욕을 퍼부었다. 아비새는 당장 시므이의 목을 베겠다고 했지만, 다윗은 하나님께 맡기겠노라며 묵묵히 걸어갔다. 시므이야말로 ‘삼백이하 맛세이’를 시전한 셈이었다.


  그의 모습에서 나는 내 안의 성급함을 본다. 어쩌면 나 역시 삼백이하 맛세이를 수없이 시도했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나는 오늘 이렇게 기도한다. 하나님, 저로 하여금 내 눈에 보인 것을 그대로 타인에게 생중계하거나 즉각 시정하려 드는 사람이 아니라, 형제애를 가지고 주께 중보하는 사람 되게 하옵소서. 보고도 모르는 것보다는 깨닫는 것이 낫겠지만, 그보다는 하나님의 개입을 요청하는 사람, 그렇게 지혜로운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앗, 글을 마치고 앞에 있는 거울을 보니 그 안에 서 있는 초로의 남성이 내게 경고를 한다. 
  “삼백이하 맛세이 금지!”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약4:6)

이한우 박사(1516교회) 울산테크노파크 에너지기술지원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