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을 일컬어 우리는 혼자만의 사랑이라 말한다. 사춘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보는 풋풋하고도 부푼 사랑이다.
내 고향은 대구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이야기다. 학교에 가려면 집을 나와 30분을 걸어가 버스를 탄다. 그날 아침도 여느 때처럼 집을 나섰다. 그런데 왠 교복을 입은 여학생이 내 앞에서 언덕을 올라가고 있다. 그 뒷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단숨에 버스 정거장에 도착했고 이내 버스가 왔다. 19번인지 22번 인지 잘 기억나지는 않는다. 미어터질 듯한 버스에 끼어들어 버스에 탔다.
그 여학생도 같은 버스를 탔다. 옆눈으로 흘깃흘깃 쳐다보니 눈이 크고 머리가 약간 곱슬머리에 너무도 예쁜 얼굴이었다. 해바라기 처럼 내게 활력을 주며, 한눈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여학생은 경북예술고 앞에서 내렸다. 경북예고 학생이다. 원래 학교공부를 열심히 하는 편이 아니었지만 그날 나는 종일 그 여학생만 생각했다.
내일도 만날 수 있을까? 어디에 사는 걸까? 내일도 만날 것을 기대하며 집으로 왔다. 아침밥을 먹고 그 여학생을 만날수 있을까하는 기대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여학생이 또 내 앞에서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다. 내마음이 들킬까 불안해 하며 버스 정류장까지 졸졸 따라갔다.
내 짝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 여학생을 보기위해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섰고, 매일 그 여학생을 볼 수 있었다. 짝사랑은 하늘에 걸쳐있는 뭉게구름처럼 나를 행복하게 했다. 한 학기 동안 시간이 멈췄고, 그저 보는 그것만으로 행복했다. 이렇게 한 학기를 보내며 한 학기 내내 학과 공부보다는 그 여학생을 상상하는 공부로 세월을 보냈다. 여름방학이 되었다. 이제 그 여학생을 다음 학기가 되어야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우리 교회와 이웃 교회 간 축구 시합이 있었는데 그 여학생이 그 곳에 있었다. 너무나도 반가웠다. 여전히 예쁘고 화사하고 아름다웠다. 응원석에 앉아 응원하는 내내 얼굴에는 해바라기같이 밝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나는 원래 축구를 잘하지 못 해 함께 응원석에 앉아 있었다. 이유있는 핑계 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그런데 기적같은 일이 또 생겼다. 축구 시합이 끝나고 한 달 때쯤 지났을 때, 그 여학생이 친구 한 사람과 함께 우리 교회 학생회 예배에 참석했다. 나는 너무 반가웠다. 옳거니 나에게도 때가 왔구나, 그제야 나는 그 친구에게 아는 척을 했다. 이제 이름도 알게 되고, 경북예술고등학교 미술부에 다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예배를 마치고 함께 어울렸고, 밤 예배를 드리고 난 후는 종종 태성이라는 친구와 함께 집에 데려다 주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친구를 향한 이성적인 감정은 졸업을 하고, 부산에 있는 고신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한 번도 고백하지 못했다. 여러 가지 이유 중에 첫 번째는 제 아버님이 목사님이셨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저 마음으로 짝사랑의 열병을 앓아야만 했다.
세월이 지나 군대에 입대하기 위해 휴학을 하고 집에 있었다. 그 때 그 여학생이 우리집으로 전화를 했다.
“영환아, 너 내일 군에 간다며, 내가 저녁 사줄께, 나올래?”
“응 그래, 몇 시에 만날까?”
“6시에 전화국 앞에서 만나자”
“알았어”
약속한 시각에 그 여학생을 만났다.
그 친구는 미대가 아닌 유아교육학과를 갔다고 했다. 왜 미대를 안 갔냐고 물었더니, 아빠가 미대를 보낼 능력이 안 된다고 하셨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우리는 헤어졌다.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 듯 말 듯, 서로 아무 말 하지 못했고, 나는 군대에 갔다. 군대 생활로 몸도 마음도 피폐했지만 내 마음에 계신 주님의 위로와 그 친구에 대한 짝사랑이 그 시간을 견디게 했다.
드디어 휴가 날이 되었다. 시국이 시끄러울 때라 17개월 만에 첫 휴가를 나왔다. 동기와 함께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대구역에 도착했다. 비가 부실부실 내리고 있었다. 그 동기와 나는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다음날을 기약하고 헤어졌다. 하늘을 날을 듯한 첫 휴가였다. 버스를 타고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이 계신 집으로 갔다. 저녁 무렵 쉬고 있는데 전화가 울리고, 내가 받았다.
“여보세요?”
“영환아, 나야, 너 휴가 나왔지?”
“너 어떻게 알았어”
“만나서 얘기해 줄게”
“오늘 저녁에 약속이 없으면 내가 밥 사줄께”
“응, 알았어, 어디서 만날까?”
“지금 전화국 앞으로 나와”
처음 언덕에서 만날 때의 그 기쁨보다 몇 배의 더 큰 기쁨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우산을 받쳐 들고 나갔다. 함께 식사하면서 이미 졸업반이 된 그 여학생의 밀린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여학생은 내가 다니던 고신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다고 했다. 군대 생활 이야기와 시국 이야기로 한참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두류공원을 우산을 받쳐 들고 빗속에 걸었다. 내 마음에는 여전히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이 있었다. 그런데 용기가 없어 아무 얘기도 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일생의 첫사랑이자 짝사랑이 그 여학생이었다.
언덕에서 만난 짝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용기가 없어 짝사랑으로 끝이 났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고전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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