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날 때마다 마음속으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왜 수많은 팀 중에 어떤 팀은 살아남아 세상을 바꾸고, 어떤 팀은 조용히 사라지는 걸까?” 비슷한 아이템, 뛰어난 학력,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시작해도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이건 마치 인류의 역사와도 같다. 왜 어떤 문명은 거대한 제국을 이루고, 어떤 문명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을까?
얼마 전 독서모임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명저『총, 균, 쇠』를 다시 읽으며 이 질문에 대한 흥미로운 실마리를 발견했다.

우리 스타트업의 ‘지리적 운명’
『총, 균, 쇠』의 핵심 주장은 간단하다. 인류 문명의 불평등은 인종의 우열이 아닌, 각 대륙 이 처한 ‘환경적 조건’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어 기후대가 비슷하다. 덕분에 작물화에 성공한 밀이나 가축화된 소와 말이 빠르게 전파되며 농업 생산력을 폭발시켰다. 이는 잉여 생산물, 인구 증가, 기술 발전으로 이어져 결국 다른 문명을 압도하는 ‘총, 균, 쇠’를 손에 쥐게 만들었다. 반면 남북으로 긴 아메 리카나 아프리카는 기후대가 달라 기술과 작물의 전파가 더뎠다.
스타트업 생태계에 적용하면 어떨까?
2010년, 대한민국에 아이폰이 막 보급되던 시기를 떠 올려보자.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대륙이 열리고, ‘모바일 앱’이라는 작물화 가능한 씨앗이 뿌려졌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카카오톡’이라는 씨앗을 심은 팀은 엄청난 수확을 거뒀다. 만 약 카카오팀이 몇년만 빨랐거나 늦었어도 지금의 ‘국민 앱’이 될 수 있었을까?
최근에는 ‘생성형 AI’라는, 인류사급의 비옥한 대륙이 나타났다. 이 새로운 환경에서 발 빠르게 움직이는 스타트업들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우리가 언제, 어떤 기술 의 파도 위에서, 어떤 시장을 마주했는지는 ‘지리적 운’에 속한다. 이것이 바로 스타트업의 ‘불공정한 우위(Unfair Advantage)’의 시작점이라 볼 수 있다.
‘환경 탓’만 할 수 없는 이유: 우리 회사의 ‘제도’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다이아몬드의 이론은 강력하지만, “모든 게 환경 탓”이라는 ‘결정론’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비슷한 환경에 있던 스페인이 아닌 영국에서 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을까? 『총, 균, 쇠』 이후의 역사는 지리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 가가 있음을 보여준다.
많은 학자는 그 ‘무언가’를 바로 ‘제도(Institution)’라고 말한다. 국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누구나 자유롭게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사회(포용적 제도)와 소수가 다수를 착취하는 사회(착취적 제도)의 운명이 갈렸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제도’는 무엇일까?
그것은 ‘조직 문화’와 ‘운영 시스템(OS)’이라고 생각 한다. 똑같이 ‘AI’라는 비옥한 땅에서 시작한 두 스타트업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A사 : 리더의 독단적인 의사결정,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경직된 문화, 아이디어를 내도 보상 받지 못하고 책임만 추궁당하는 분위기.
B사 : 투명한 정보 공유, 데이터 기반의 빠른 실험과 실패 장려, 뛰어난 인재에게 합당한 보 상과 권한을 부여하는 문화.
어느 회사가 더 뛰어난 인재를 모으고, 고객의 목소리에 빠르게 반응하며 결국 시장을 차지 하게 될까? 액셀러레이터가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아이템만큼이나, 그 이상으로 ‘팀’과 ‘창업가의 그릇’을 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이 팀이 과연 위대한 ‘제도’ 시스 템을 만들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다.
최고의 땅, 최고의 국가: 유니콘의 조건
미국은 사기적인 ‘지리’를 가졌다. 양옆에 거대한 대양이 천연 방벽이 되어주고, 국토 안에 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들이 부러워할 자원과 광활한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지리적 조건만 보면 『총, 균, 쇠』 이론의 완벽한 증거 같다‘
하지만 미국의 진짜 힘은 그 땅 위에 세운 ‘제도’에 있었다.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다양성을 확보하고, 실패를 격려하는 문화, 강력한 특허 제도와 자본 시장 등은 그 ‘지리적 축복’을 ‘글로벌 패권’이라는 결과로 바꿔놓은 소프트웨어였다.
최고의 환경(Market-timing)과 최고의 제도(Team-culture)가 만났을 때, 비로소 ‘유니콘’이라는 전설적인 존재가 탄생한다.
창업가로서 우리는 시장 환경이나 기술의 흐름 같은 ‘지리적 조건’을 선택하기 어렵다. 때로는 척박한 땅에서, 때로는 이미 경쟁자가 선점한 땅에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100%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바로 우리 회사라는 작은 ‘나라’에 어떤 ‘제도’와 ‘문화’를 만들 것인가 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배우며 성장하는 조 직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리더의 아집과 불통으로 서서히 침몰하는 조직을 만들 것인가, 그 선택은 오롯이 창업가와 팀의 몫이다.
어떤 땅에서 시작했는지보다, 그 땅 위에 어떤 나라를 세울 것인가가 당신과 팀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시드액셀러레이터 김성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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