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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이종인 목사와 이 달의 책

“질문하며 사는 삶”

  아이들은 질문이 많다. “엄마 해는 왜 있어?”, “아빠 왜 밤이 오는 거야?”, “바다는 언제 생겨난거야?”, “사람은 왜 죽는 거야? 죽음이 뭐야?” 만나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이 의문투성이기에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가면서 질문들은 잦아들고 급기야 거의 사라져 버린다. 궁금한 것들이 해소되어서가 아니라 포기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없지 않고 있는가?”라는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은 오랜 인류의 철학 역사에서는 해결되지 않는 난제입니다.

  “철학은 묻지만, 종교는 답한다”는 말이 있다. 성경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위의 질문들에 대한 답은 너무도 간단히 정리된다. “해는 하나님께서 넷째 날에 창조하셨어. 밤과 낮을 하나님이 나누셨고, 사람의 죽음은 에덴에서 우리 선조 아담의 타락으로부터 시작된 거야”라고 답할 수 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와 목적에 대해서도 철학은 복잡한 갈등과 논쟁 속에 머무르지만, 우리는 인생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고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라고 고백한다.

  성경은 우리에게 명쾌한 답을 하지만 질문과 고민을 생략하거나 거세하지는 않는다. 한계를 가진 인생이 이해하기에는 넘어서는 수많은 질문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르가 쓴 『공포와 전율』에서는 100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시험하시는 하나님의 명령 앞에서 전율하며 고뇌하는 아브라함의 처절한 사색, 내적 고통,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뒤섞여 나온다. <욥기>에서 치열하게 논쟁하는 내용은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상황을 맞은 욥의 상황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질문과 항의가 터져 나오며, 원칙에 따른 공격과 방어 속에서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이 드러난다. 

  어른이 되면서 어린 시절의 근본적인 질문을 포기하고 잃어버리듯, 성도가 되면서 답을 이미 찾았다는 이유로 우리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질문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좋겠다. 문학과 철학과 사상, 여타의 종교들은 인생의 고통에 대해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 된다. 우리는 답을 가졌다고 오만함을 뽐내지 말고, 고통당하고 고심하는 믿지 않는 이웃들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려 할 때,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깊이를 더욱 헤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저자는 재일교포이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아닌 주변인으로 일평생을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에 속했는지 일평생 고민하며 살아온 사람이다. 1950년 규슈 구마모토현에서 재일 한국인 2세로 태어나 일본의 근대화 과정과 전후 사회를 날카로운 분석 하며 시대를 비판한 지식인이다. 뉘른베르크대학에서 베버와 푸고, 사이드의 정치사상을 연구했고, 재일 한국인 최초로 도쿄대학 정교수가 되었다. 『고민하는 힘』을 비롯해서 『살아야 하는 이유』, 『마음』,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와 『한반도와 일본의 미래』 등 다수의 작품이 있다. 

강상중 『고민하는 힘』  이경덕 역(파주: 사계절, 2017)

  본서는 총 8가지의 질문과 한 가지의 제안으로 이루어져 있다. 질문들의 내용은 대담하고 화려한 질문들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당연하게 겪어가고 있음에도 피하고 있던 원색의 질문들을 피하지 않고 용기 있게 다루어가고 있다. 

  1장은 나는 누구인가?를 묻습니다. 저자는 사춘기 때 이 물음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기중심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통해 인생에게 질문하기보다, 인생에 걸어오는 질문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근대 이후로 자아 과잉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는 외부, 즉 타자를 향할 때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한다. 

  2장에서는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를 묻는다. 우리 시대는 자본주의가 발흥했던 초기의 순수했던 자본주의 정신에서 아득히 멀어지고 말았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말하는 검소한 생활과 사리사욕을 벗어난 소명으로서의 노동을 통해 발생한 잉여생산물과 부의 축적에서 자본주의가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방해받지 않는 자유로운 경쟁이 부를 형성하게 하고 풍요로운 사회를 실현할 수 있으며, 양심과 하나님의 섭리로 모든 불평등은 해소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하는 현실은 순전한 생각에서 멀어져 천박하고 무서운 파괴력을 지닌 금융에 기생하는 자본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돈은 노동으로부터 독립하여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어느새 돈을 위해 일하는 노예가 되고 말았다. 금융자본주의로 인해 개인은 끊임없이 가난해지고 있는 병폐에 대한 경계의 시선을 거두지 말라고 조언한다.

  3장은 “제대로 안다는 것이 무엇일까?”를 묻는다. chat-GPT로 시작된 AI혁명은 지식과 정보를 언제든 가져다 쓸 수 있는 시대로 전환 시켜놓고 있다. 저자는 많은 정보를 안다는 것이 삶의 지혜를 더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4장 “청춘은 아름다운가?”라는 질문을 통해 봄에 해당하는 청년 시절은 아름답기보다 혹독한 시절이라고 말한다. 청춘은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하는 시기이며, 위험한 골짜기를 지나는 위험한 시기요, 해답 없는 물음을 품고 시름하며 성장하는 시기로 묘사한다. 저자는 근본을 질문하며 고독과 씨름하는 젊음의 시간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요령만 부려 고뇌의 청춘을 건너뛰어 버리면 탈색된 청춘으로 딱딱한 각질만 가진 이상한 중년과 노년을 맞게 될 것이다.

  5장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에서 저자는 믿음을 자기를 믿는 것과 동일하게 파악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일인 종교’, ‘자기가 교주’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무신론자인 저자가 직면하는 외로움, 고통, 죽음이 머무는 거대한 우주 앞에서 홀로 서는 고독한 실존을 보게 된다. 

  6장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에서 일과 타인의 인정과 인간관계를 다루고, 

  7장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에서 일시적이고 변하고 식어지는 사랑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사랑을 그때그때 상대의 물음에 응답하려는 의지라고 말하며 식어질 것을 두려워하며 겁낼 필요 없이 사랑할 용기를 내라고 말한다. 

  8장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에서는 자살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과거에는 생명을 스스로 끊지 않고 천수를 누려야 할 이유가 생명이 자기 것이 아니라 조상들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기 때문이었지만, 현대사회는 그와 같은 관습이나 의식이 없기에 규제가 없는 위험한 상태라고 진단한다. “죽은 것도 자유”라고 말하면서 자유를 끝까지 밀어붙일 때, 발생하게 되는 자유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9장 “늙어서 최강이 되라”에서 결론적으로 제언합니다. 고민하지 않고 사고하지 않는 노년은 예전처럼 사회 안전판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교란하는 힘’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고민하고 질문하며 살라고 권한다.

“2월 겨울, 도쿄 신주큐 소세키산방 기념관에서”

  책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인물은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이다. 빅터 프랭클이나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간혹 등장하기는 하지만 저자에게 압도적 영향을 끼친 인물은 앞의 두 인물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의 국민작가이며 ‘메이지 문호’로 불린다. 나쓰메 소세키가 데카르트 이후에 등장한 개인, 자아의 확장과 전체주의 국가 사이에서 갈등했던 것처럼, 막스 베버는 소세키와 동시대 인물로 독일에서 발흥 되는 전체주의 파시즘 사이에서 고뇌하였다. 오늘날은 자아 과잉으로 온갖 신경증과 고독, 우울증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개인에 대한 해답은 그리스도의 몸 된 공동체에 있고, 창조주 하나님께 돌아가는 데 있다. 저자는 진솔하게도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개인과 인생 자체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답을 주지는 않지만, 문제의식을 깊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가 어디에서 건짐을 받았으며, 얼마나 처절한 고통과 고뇌 속에서 구원을 받았는지 알게 한다. 성도들에게 문학과 사상의 힘은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를 배우게 하는 힘이 있다. 깊어가는 가을, 고민하는 힘과 질문하는 힘을 통해 주님의 은혜를 풍성히 누리시기를 바란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시1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