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력을 지대하게 미친다. 입법부 정치에 의해 법이 만들어지고, 만들어진 그 법을 집행하는 것이 행정부 정치이고, 사법부는 만들어진 법의 옳고 그름에 대해 판결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도 세상 정치의 영역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다. “교회는 정치 이야기 하지말라” 정치에 대해서 교회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정교분리”다. 교회가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에서 가장 많이 주장하는 내용이 칼빈의 “정교분리(政敎分離)” 원칙이다. 그런데 정교분리 원칙만큼 잘못 해석된 내용이 있을까 싶다.
많은 목사들과 크리스챤들이 정교분리의 타이틀을 내세우면서 세상 정부가 성경과 진리를 무너뜨리고 신앙의 자유를 침해함에도 불구하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정교분리의 원칙 때문이다.
칼빈이 이런 식으로 우리에게 말했는지 진의를 따져 봐야 한다. 교회가 정치를 말하지 않는 것이 과연 정교분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칼빈은 교회에서 정치 얘기하지 않는 것이 정교분리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로 칼빈의 “저항권 사상”은 신앙의 자유를 빼앗으려는 모든 세속 권력들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하라고 했다. “세속 권력이 하나님의 권리를 도적질하려 할 때 그들에게 복종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머리에 침을 뱉어야 한다. 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 마땅한 영광과 하나님께 마땅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금하는 모든 압제적인 명령에 저항해야 한다.”라고 존 칼빈은 말했다.
그리고 아브라함 카이퍼는 영역주권 사상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은 모든 삶의 개별 영역들에서 인정되어야 한다. 정치에도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책무이자 의무이다.”라고 말했다.
오늘의 한국교회 현실을 보라 군사정권에서도 없었던 목사 구속의 현실을 보라 손 목사님은 무죄라고 보지만 만약 유죄라 해도 공직선거법 초범은 보통 벌금 100만 원 수준인데 구속까지 시킨다. 대부분의 목사들과 교회가 침묵으로 동조한 결과다. 이제 칼이 침묵한 목사와 교회들에게도 들이 닥칠 것이다. 차별금지법이 통과되고나면.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 줘야 할 책임이 우리 목회자들에게 있다. 그냥 기독인들은 세상 정치에 관심을 끄고, 정치적 중립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는 애매한 말을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학창 시절 SFC에서 늘 외쳤던
“하나님의 주권을 온 땅 위에”라는 모토처럼, 대한민국 정치 영역에도 하나님의 절대 주권이 임하도록 우리 개혁주의 후예들은 외쳐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삶과 신앙의 전인적인 일치를 주장하는 개혁주의의 신앙으로 우리 삶의 전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이 임하도록 가르쳐야 할 책임이 있다.
그래서 좌우이념과 상관없이 좌파정부이던 우파정부이던 그 정부가 신앙의 자유와 성경의 진리를 왜곡하고 심각하게 공격하는 세력이라면, 정교분리라는 맞지도 않는 이론을 내세워서 침묵함으로 동조하는 교회가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신사참배가 종교행위가 아니라고 말하고, 그것은 국민의례라고 주장하는 일본제국주의자들에 동조하여 신사참배에 참여하는 일이 신앙의 행위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국민의 의무라고 거짓 선동한 일을 또 다시 범해서는 안된다.
비진리에 대해 틀리다고 말하지 않는 것은 거기에 암묵적 시인을 하는 것이다. 과연 크리스챤들이 정치에 무관심 하는 게 제대로 사는 삶일까?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암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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