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방 후 남한에 주둔했던 미군이 일본으로 물러가기로 결정할 때에 이승만 대통령은 “만약에 미군이 지금 철수하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난다”고 하면서 미군 철수를 반대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에게 한국은 Vital Interest(중요한 관심지역)이 아니었기에 미군 철수를 강행했다. 1948년 6월에 시작한 미군 철수는 이듬해에 완료되었다. 그런데 1년 뒤 1950년 6월 25일 김일성은 소련제 무기를 앞세우고 남침을 감행했다. 북한군이 가지고 온 소련제 무기는 당시 미국의 무기를 능가할 정도로 탁월한 무기였다.
이때 이승만이 6월26일 동경에 있던 맥아더 장군에게 전화를 했다. 야심한 밤에 부관이 전화를 받았다. “장군은 지금 주무십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은 “지금 당장 깨워서 전화를 바꿔”라고 호통을 쳤다. 맥아더 부관이 놀라서 야심한 밤에 맥아더 장군에게 전화기를 가져다줬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 호통을 친다. “내가 미군 철수하면 북한군이 쳐내려올거라고 말했지 않았느냐! 당신이 지금 당장 책임지고 막아라”고 소리를 질렀다.
맥아더는 본국으로 연락을 긴급히 했고,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애치슨이 트루먼 미국 당시 대통령에게 이 사실을 보고 했었다. 트루먼은 루즈벨트 대동령이 임기 중 돌아가시는 바람에 대통령이 된 사람으로써 사실 전쟁 경험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소련의 스탈린이 이러한 트루먼을 시험해 보기 위해서 남침을 강행한 것이다. 트루먼은 여기서 밀리면 독일까지도 소련이 침공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여 긴급히 한국전에 미군 개입을 허락한 것이다. 한국을 도와야 한다는 절박감이 아니라 단순히 스탈린과의 정치적인 관계 속에서 결단한 것이다.
맥아더 장군이 급히 미군을 이끌고 부산에 도착한 날이 7월 1일 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올라가 7월 3일 대전에 도착했다. 미군은 북행을 감행하고 한국군은 남쪽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미군이 북한군과 첫 전투를 벌인 날이 7월 5일이다. 첫 전투 장소가 오산이다. 지금도 오산에는 초전(첫 전투)를 기념하는 추모 공원이 있다.
이날은 약 7시간 동안 전투를 하였는데 미군은 540명 중 150명 전사하고 31명이 실종되었지만, 북한군 5천여 명은 그 전투의 충격으로 10일 동안 남한으로 진격을 못 하고 있었다. 당시 미군 병사로서 한국전에서 제일 먼저 전사한 미군은 “케네스 셰드릭(Kenneth Shadrick) 일병”으로 오산 전투에서 전사한 것이다. 그분에게 감사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탁월한 외교가로서 맥아더의 기질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맥아더는 고집이 쎄고 미국 대통령 말도 잘 듣지 않는 사람이지만 전쟁은 무슨 수를 써더라도 승리로 이끌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은 맥아더에게 중요한 제안을 한다.
“귀하께서 우리 국군을 지휘해 주시오”
7월 14일에 제안한 것을 맥아더는 7월 18일에 수락을 한다. 답변내용은 다음과 같다.
“귀하의 용맹스러운 국군을 지휘하게 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반드시 승리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진격에 진격을 거듭하였다. 소위 근래에 화두가 된 “전시작전통제권”이 넘어간 사건이었다. 그리고는 소련과 미국이 합의하여 그어 두었던 38선에 도달하였다. 당시 한국군 사령관은 정일권 장군이었다. 그는 육군참모총장이었고 계급은 대장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맥아더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
38도 선에 도착한 정일권 참모총장에게 이승만 대통령이 전화를 하였다.
“장군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38도선에 머물러 있습니다. 왜 거기에 가만히 있어요? 이북으로 진격하세요.” 그러자 정 장군은 “맥아더장군의 지시가 없어서....”
그러자 곧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 소리를 높여 말했다. “정 장군은 누구의 부하입니까?” 그러자 정 장군은 “각하의 부하입니다.” “그러면 진격하세요.”그래서 이북으로 진격이 이루어졌다.
이날이 10월 1일이다.
전시작전통제권이 다시 돌아온 날인 셈이다. 이날을 우리나라가 국군의 날로 채택한 것이다. 이 이야기는 한국전의 작은 스토리이면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전시작전권이 넘어갔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전시작전통제권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이다.
현재 전쟁이 나면 미군이 전시작전 통제권을 가지게 된다. 그러면 대한민국 군인은 미군의 지휘 체계 아래에서 미군 병사와 같이 되는 셈이다. 북한을 비롯한 적들은 대한민국군인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미군하고 싸우는 것이 된다.
누구의 지휘를 받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 각각은 약하나 우리의 대장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가 지휘를 하면 우리는 그의 군대가 되는 것이다.
이 전쟁이 여호와께 속한 것이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면 언제나 우리는 승리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전쟁의 원리이다. 전시작전권을 가져오는 것이 항상 능사는 아니다.
10월 국군의 날에 우리의 지휘관을 다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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