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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교계일반

『바울이 절망에 무릎을 꿇을 수 없었던 이유2』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8:35)

 절망의 시대 고통스런 삶을 살았던 바울

  먼저 바울은 그 시대의 아들이었다.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서에 그려진 사도바울은 무엇보다도 유대인들로부터 끊임없는 박해를 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인 신념으로 인해 사도 바울에게 가해진 박해는 바울에게는 혹독한 것이었다. 자신의 생명을 대신해서라도 구원하기를 원했던 동족 유대인들의 박해는 그에게 단순한 육체적 고통을 넘어서는 그의 심령의 매인 바였다(롬 9:1-3 행 20:22~24). 이러한 유대인들의 박해는 많은 경우 정치권력과 연결되어 사도 바울을 고통스럽게 하였다(행 22, 24장). 때때로 당시의 정치권력에 의해서 생명을 건지는 경우도 있었지만(행 19, 21, 23장) 그는 고문과 투옥 그리고 법정에 서는 일을 여러 번 겪어야만 했다.

  바울 개인의 삶에 대하여 많은 것이 알려지지 않지만 바울에게는 그를 늘 괴롭혔던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고후 12:7). 이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의 제안들이 있지만(그에게 있었던 심한 안질이거나 유대인들의 핍박일 것으로 많은 사람이 이해하기도 한다), 그것이 무엇인가 보다는 그것이 얼마나 그를 괴롭혔으며 그것에서 그가 놓여나지 못하였다는 것이 중요하다. 

  육체적인 고통이 수반되는 이 ‘가시’보다도 하나님의 은혜가 더 크다는 깨달음이 그에게 있었다고 해서 그 육체적인 고통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다메섹에서 만나 주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고 난 이후에 그가 단지 모든 유대인들에게 박해를 받았을 뿐 아니라 그의 가족들로부터도 버림을 당했을 것은 분명하다. 당시의 랍비들이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이 드물었고 그가 결혼 생활에 대해 언급할 때 매우 실제적이라는 사실(예를 들어 고전 7장) 등이 그가 유대교에 속해 있을 때 결혼하였지만, 개종 후에 가족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이혼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학자들도 있다. 여하튼 그는 깨어진 가정 또는 가정이 없음으로 겪는 어려움도 겪어야 했다.

  그뿐인가? 그의 사역은 어떠했나? 바울은 서신서들을 통하여 그가 가지고 있는 교회의 이상적인 모습에 대하여 끊임없이 쓰고 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그가 세웠던 교회들이 자신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받은 교회에 대한 이상에 못 미치기 때문이었다. 모든 교회들이 문제를 가지고 있어서 거의 대부분의 서신이 각 교회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바로 잡기 위해서 쓰여졌고 특히 고린도서 같은 경우는 수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방인 가운데도 없는” 모습(고전 5:1)으로 인해 치리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고전 5:5; 딤전 1:20)이 있을 때 그의 심령은 어떠했을까? 그의 사역은 오늘날 목회적 관점에서 볼 때 그 당대에는 그렇게 성공적이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세운 교회들로부터 모은 연보를 가지고 생명을 걸고 올라간 예루살렘에서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지를 받은 것 같지 않다(행 21~24장에서 예루살렘 성에서 교회가 바울을 도왔다는 암시가 거의 없다). 그 사역 말미에 그가 키웠던 많은 사역자들이 그를 떠나는 외로움을 경험하기도 했는데 (딤후 1:15; 4:10) 이는 결코 ‘오늘날의 성공한 목회자상’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가 사역을 감당하면서 겪었던 어려움들을 나열한 “고난의 목록”(catalogs of afflictions: 롬 8:35, 고전 4:9~13, 고후 4:8~9, 6:4-5; 11:23~29, 12:10)은 그의 삶이 어떠했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게 해준다. 그가 끊임없이 이야기했던 “영광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하며(롬 8:17, 고후 4:17)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환난도 받아야”(행 14:22) 될 뿐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이 따르리라”(딤후 3:12)는 말씀은 결코 그에게 과장이 아닌 현실이었다.

  바울은 그렇기 때문에 자신과 세상 사람들이 속하여 있는 모든 만물들이 고통 가운데 신음하며 탄식한다고 보았다.(롬 8:22) 그리고 성령님으로 인해 양자 된 우리들까지도 몸의 구속을 기다리며 동일하게 신음하며 탄식한다고 고백한다.(롬 8:23) 바울은 이런 면에서 세상에 대하여 매우 현실적이고 실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해하고 그가 경험한 세상 절망을 가져다주기에 충분한 세상이 그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