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을 옮겨와 심으셨습니다. 그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곳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둠과 가난한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 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 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지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은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나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이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의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옵소서 <언더우드 선교사 기도문>
1907년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 땅을 선교하며 고백한 것으로 전해지는 기도문이다. 이것이 바로 19세기 20세기 초 한국의 모습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았던 대한제국, 도무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앞이 캄캄하던 이 민족.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그 어느 나라 민족보다 더 열정적으로 주님을 믿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그런 조선이 지금처럼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고 수많은 성도가 자유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은 바로 이곳에 뿌려진 선교사들의 피 즉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무지 같았던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 그들을 통해 희망의 씨앗이 아름답게 자라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다
선교사 언더우드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하다가 과로로 죽었고, 이 땅에 선교의 문을 연 최초의 선교사 토마스는 한국 땅에 발을 딛자마자 참수당하고 말았다. “나에게 천개의 생명이 주어진다 해도 그 모두를 한국에 바치리라” 고백했던 21살의 처녀 선교사 캔드릭 그녀 또한 과로로 한국에 온 지 9개월 만에 숨을 거두고 만다. 수많은 선교사들이 이 땅에 복음을 전하다가 풍토병, 과로, 전염병 등으로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죽어갔다. 선교사 본인뿐만이 아니었다. 터너 선교사의 첫째는 생후 2개월 만에 둘째는 하룻밤을 못 넘기고 셋째는 5개월 만에 사망. 가족들, 특히 어린 자녀들의 희생이 컸다.
오늘 우리나라가 이처럼 큰 부흥을 이룬 것은 그냥 이루어진 것 아니다. 이 땅에 피를 뿌린 수많은 선교사들의 헌신과 죽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주님을 위해 이 나라에서 죽어갔을 때 그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은 그들을 씨앗 삼아 이 땅에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하신 것이다. 그들의 믿음이 열매를 맺게 하신 것이다.
오늘 우리나라는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탄핵정국, 여야의 대립, 정치적 혼란. 보수와 진보의 갈등, 경제적 불확실성.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전쟁 등 곳곳에서 들려지는 소리는 우리들을 암담하게 하는 소식들이다.
그러나 이 땅의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믿음의 씨앗 되어 헌신으로 자신의 몸을 이 땅에 묻었을 때 그들의 믿음은 수많은 열매가 되어 이 땅을 은혜와 축복의 땅으로 변화시켰듯 오늘도 우리 믿는 자들이 주님을 위해 이 땅을 위해 이 땅에 한 알의 밀알이 되어 갈 때 이 땅은 다시 회복과 부흥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는다. 한 알의 밀은 땅속에서 죽어갈 때 비로소 열매 맺는 밀알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 오늘날 이 사회의 문제는 어느 누구도 죽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님이 십자가를 통해 죽으심으로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듯 우리도 내 삶의 자리에서 한 알의 밀알 되어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우리 공동체가 우리나라와 민족이 새롭게 될 줄로 믿는다.
힘들다고 낙심하지 말자, 포기하지도 말자. 주님이 십자가를 구원과 부활의 디딤돌로 삼으셨듯 우리가 한알의 밀알의 믿음으로 나아가기만 한다면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를 더욱 빛나게 하실 디딤돌이 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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