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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베란다의 블라인드를 내리다가 한참 하늘을 바라보고 서 있을 때가 있다. 15층 남향인 우리 집 베란다에선 달의 변화를 뚜렷이 볼 수 있는데, 미인의 눈썹 같던 초승달이 잠깐 상현달이 되었다가 어느새 보름달로 차오르곤 한다. 아! 오늘이 보름이구나, 매번 새로운 감탄으로 밤하늘을 바라보게 된다. 거실에 있는 남편을 불러 저 아름다운 달을 좀 보라며 수선을 피울 때도 많다. 남편과 함께 감탄하고 있는 시간, 달에서 바라보는 푸른 별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보기도 한다. 정확하게 운행되는 우주와 그 위에 스민 창조주의 손길을 자각하게 되는 밤하늘은 언제나 경이롭다. 그럴 때면 읽고 있던 책이나 저녁 식탁 메뉴, 친구의 안부 전화에 머물렀던 내 의식은 지경을 넓혀 우주로 확장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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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현상은 여행 중에도 가끔 일어난다. 문명 세계에서 벗어나 과거로 회귀한 듯한 풍경 속에 잠길 기회를 얻을 때가 있다. 경이로운 시간 안에서 태초의 흔적을 만난 여행지를 꼽으라면 내겐 몽골의 초원이 먼저 떠오른다.
몽골은 동북아시아 내륙국으로, 한반도의 열다섯 배나 되는 광대한 땅이다. 해발고도가 높은 데다 내륙국이라 혹독하게 추워서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편이다. 수도 울란바토르의 경우 연평균 기온이 0°에 머문다. 하여 13년 전, 그나마 15°~20° 기온을 유지하는 한여름에 몽골을 방문했다. 울란바토르를 벗어나 초원 지역으로 들어가니 끝없이 펼쳐진 푸른 대지만 망막에 가득 담겼다. 13세기 대초원에서 발원했던 강력한 몽골 군대의 말발굽 소리가 시현인 듯 느껴졌다. 유라시아대륙을 거침없이 장악했던 희대의 리더 징기스칸, 그가 이끄는 몽골 군대는 세계를 두려움에 떨게 하지 않았던가.
옛 영광을 뒤로하고 현재 몽골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갇혀 지정학적으로 난감한 위치에 놓이고 말았다. 불리한 위치에서 세계와의 무역이나 교류가 어려워 경제적으로도 낙후되었다. 아직도 국민의 상당수가 초원 지역에 머물면서 유목 생활을 하는데, 전통 방식을 고수하면서 여전히 옛 시간 안에 머물러 있는 모습이었다. 주거지인 게르가 초원 여기저기에 보였는데 그중 한 가정을 방문해 생활상을 직접 체험할 기회가 있었다. 이동식 원형 텐트인 게르는 의외로 통풍이 잘되어 연교차가 심한 몽골 기후에 적합해 보였다. 화덕 앞에 앉은 안주인이 양젖으로 치즈 만드는 과정을 직접 시연해 주었는데, 등에 업힌 어린아이가 칭얼대자 안주인은 아이의 누런 콧물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쓱 닦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 손가락으로 치즈를 떼어 여행객들에게 건네주었다. 한 번 맛보라는 친절한 권유에 받으면서도 난감했던 기억이 있다. 맛 평가를 기대하는 순박한 여인의 미소에 최고라고 답해줄 수밖에 없었다. 물 사용이 원활하지 않아 여인과 어린아이의 옷에도 묵은 때가 보였다. 어떻게 보면 인간 본연의 모습인 듯해 싫지 않았다. 바로 한국의 오륙십 년대 모습일 터였다. 경제가 성장할수록 자기 정체성을 소유한 물질과 동일시하는 문명인보다 오히려 순수해 보였다. 초원 위의 몽골인들은 그렇게 말을 타면서 유목을 하고 자연에서 나오는 것들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몽골로 출발하면서 가장 기대한 건 밤하늘이었다. 밤하늘을 가득 채운 은하수와 별들을 직관하고픈 열망이 컸다. 유년 시절, 옥상에만 올라가도 일곱 개의 별 북두칠성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던 기억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평상에 누워 여름밤 별자리를 찾아보던 추억은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게르에서 자정을 기다렸다가 초원으로 나와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우리 가족은 탄성을 내뱉고 말았다. 유년의 여름 별자리들이 여전히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북동쪽 하늘에서 남쪽 하늘로 길게 흐르는 은하수가 은빛으로 반짝였다. 경이롭다는 감탄 외에는 창조의 위대함을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 밤, 문명의 그림자가 지워진 초원에서 겉치레를 비우고 본연의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면 과언일까. 하나님의 크심과 나의 작음을 깨닫고, 먼지에 불과한 내가 우주적인 사랑을 누리고 있다는 감격이 차올랐다. 사백삼십 년 전 북극성에서 출발한 빛이 광속으로 달려 그 순간 우리 가족의 눈동자에 담기고 있었다. 광대한 우주에 충만한 창조주의 숨결을 느끼면서 감사했다.
잠시 눈을 붙였다가 새벽엔 대지의 일출을 보기로 했다. 현지 유목민의 조언에 따라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일출을 조망하기 좋은 언덕까지 삼십 분 정도 걸어갔다. 어둠 속은 남편과 나, 아들이 풀 밟는 소리로만 채워졌다. 귓가에 다가서는 날벌레의 날갯짓 소리마저 너무 크게 들려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지평선의 일출을 기대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언덕에 도착해 숨을 돌릴 때쯤, 광활한 초원의 지평선 너머로 붉고 뜨거운 기운이 솟구쳤다. 젊은 태양은 태초의 것인 양 장엄하면서 호쾌했고, 상상 너머의 광경은 시야를 압도했다. 우리 가족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소리 높여 불렀다. 연주 악기나 배경음악이 없어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찬양을 드렸던 것 같다. 주의 성실하심 속에 우주는 아름답게 운행되고 있었고 어둠을 뚫고 새벽빛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첨단 문명 세계에서 바쁜 일상을 사는 동안에도 태양은 매일 떠오르고 밤하늘의 별들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던 거다.
문명인의 눈에는 초원 위에서 이동식 삶을 사는 유목민들이 불편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이야말로 새벽 태양과 밤하늘 별들을 모두 누리며 사는 사람들이었다. 창조의 숨결을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땅인 것 같아 부러웠다. 적어도 문명의 껍질, 즉 아파트와 자동차, 전자기기와 통장이 나의 정체성인 양 착각하고 살지는 않을 터였다. 새벽과 밤이면 사랑받는 피조물로서 창조주 앞에 겸손하게 설 수 있는 땅이었다. 태초의 기억을 만나고 싶다면 몽골의 초원으로 떠나보면 어떨까. 몽골은 분명 첨단 문명사회에서 놓친 창조의 손길과 본연의 정체성을 일깨워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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