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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이미지를 소비하는 땅, 모나코”

  얼마 전, 프랑스 L사의 천만 원대 명품 가방이 중국 공장에서 제작되는 원가는 팔만 원에 불과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미지와 실체의 극단적 차이를 고발하는 기사에 독자들은 허탈하다는 댓글 반응을 쏟아놓았다. 세계 1위 부호에 등극해 있는 L사의 오너야말로 ‘이미지 소비’라는 단순 전략으로 소비자들을 공략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 그대로, 일부 소비자들이 L사의 가방을 사기 위해 오픈런과 무한대기를 마다하지 않는 건 가공된 명품 이미지 때문일 테다. 분수에 넘치는 고액을 지불해서라도 명품 이미지를 사서 자기화하려는 것이다. 건전한 실체보다 거품 가득한 이미지에 집중하는 우리 사회를 잘 보여주는 단면인 것 같아 씁쓸했다. 

“이미지를 소비“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잠31:30) (사진_블로그 Explore France)

  그 기사를 접하면서 문득 명품 이미지의 대명사로 불려온 영화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얼굴이 떠올랐다. 모나코 왕비였던 그녀의 삶 역시 이미지 소비의 희생양에 불과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도시국가 모나코는 바티칸시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작은 나라지만 남프랑스 여행의 백미로 꼽힌다. 모나코, 마르세유, 생폴드방스, 에즈, 아비뇽, 니스, 깐느, 툴루즈 등을 둘러보는 남프랑스 여행은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행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중해의 강렬한 태양과 에메랄드빛 바다, 프로방스풍의 집들과 라벤더 향기, 평화로운 해변과 달콤한 휴식은 관광객들을 낭만으로 사로잡는다. 더욱이 화가 마크 샤갈이나 파블로 피카소와 관련된 카페 명소가 많고 그들의 작품을 볼 수 있는 미술관도 있어서 예술적 감성을 충족하기에도 최적의 여행지다. 

  더욱이 모나코는 여배우 ‘그레이스 켈리’의 결혼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할리우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레이스 켈리는 당대 세계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톱스타였다. 그녀가 화보 촬영 차 모나코 왕궁을 방문했다가 레니에 왕을 만나게 되었고 둘은 금방 사랑에 빠졌다고 전해진다. 배우로서의 인기를 뒤로한 채 모나코 왕비(정확히는 공비)가 되었을 때, 세계 팬들은 더 깊이 그녀의 명품 이미지에 빠져들었다. ‘톱스타이자 왕비’라는 이미지는 세계적인 재벌도 구매하기 어려운 한정판 명품 같았기 때문이리라. 그녀의 결혼식은 화려함의 극치였다. 식전 축가 행사만 7일간 이어졌고 성대한 결혼식은 인공위성을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기도 했다. 헬렌 로즈가 디자인한 고급 웨딩드레스는 서른네 명의 재봉사가 육 주간에 걸쳐 제작했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녀의 결혼으로 인해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게 된 모나코는 세계적인 관광지로 급부상했다. 관광 수입 덕분에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서 벗어났고 프랑스에 귀속되는 불행도 피할 수 있었다. 어떻게 보면 모나코 공국은 그간 그레이스 켈리의 명품 이미지를 소비해 왔고 지금까지도 그 후광을 누린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모나코를 여행해보니, 지중해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해안에는 고급스러운 요트들로 가득했다. 지중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왕궁도 화려하긴 마찬가지였다. 모나코의 여름은 한껏 들떠 있었다. 화려한 왕궁에 입성해 부와 명성을 누렸던 미인 그레이스 켈리는 명품 이미지의 정점이었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녀의 삶은 거품 같은 이미지 소비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든다. 1982년 9월 14일, 모나코 왕궁은 그레이스 켈리의 사망 소식을 발표했다. 그녀는 전날 운전 중에 뇌졸중과 흡사한 발작을 일으켰고 차를 제어하지 못한 채 비탈로 추락했다는 내용이었다. 혼수상태에 빠진 지 하루 만에 뇌사 판정을 받았다. 나중에 알려지기로는, 할리우드의 자유분방한 분위기에 젖어있던 그녀에게 모나코 왕궁 생활은 지나치게 엄격하고 답답했으며 결국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재정 적자로 파산 위기에 놓인 모나코의 레니에 왕이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그레이스 켈리에게 접근했고, 치밀하게 그녀의 명성을 이용했다는 후문도 흘러나왔다. 어쩌면 그레이스 켈리의 실체는 가공된 명품 이미지에 갇혀 서서히 고사(枯死)한 건지도 모르겠다. 

  소비자들이 명품에 집착하는 현상은 결국 자신의 이미지를 상향하려는 욕구 때문일 테다. 이미지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다만 의도적으로 가꾸기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적이고 가공될 수 있다는 게 이미지의 맹점이다. 이미지를 광고하여 돈과 시간을 소비하게 만드는 전략은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의 생태인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나약해서 누구든지 이미지 소비의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죄성에 예외는 없다. 이미지만을 소비하는 인생이 되지 않으려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실체를 끊임없이 환기하는 방법밖에 없을 테다. 인생은 실체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 ‘이미지’로 오신 게 아니라 ‘실체’로 오셨다. 십자가의 고통을 인간의 몸이라는 실체로 온전히 감당하셨다. 찔리고 못 박히고 채찍에 맞으며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체로써 확증해주셨다. 하여, 우리는 허울뿐인 이미지의 껍질을 벗고 실체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행복한 존재들이다. 잘난 척, 멋진 척 이미지를 꾸미지 않아도 되는 인생은 중국 공장에서 틀에 박힌 듯 제작되는 가방에 비견될 수 없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의 값으로 매길 수 없는 명품으로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화려한 모나코 왕궁을 압도하는 지중해의 찬란한 윤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