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독문화/신앙에세이

따로 또 같이, 스페인

 

  며칠 전 문학 포럼 행사가 있어 서울에 다녀왔다. 서울에 거주하는 작가들에게는 몇 시간의 외출이지만 지방 작가에게는 하루를 고스란히 할애해야 하는 일이다. 다녀올 때마다 물리적 거리에 쏟은 시간은 아깝지 않은데 서울 작가들의 지방 편견에 가끔 회의가 느껴질 때가 있다. 지방에서 작품 활동하려면 제약이 많겠다며 안쓰럽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울산을 변방의 귀양지 정도로 여기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한번은 포럼에 참석한 유명 작가께서 내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서 부산이라고 답했더니 그렇다면 해양문학-이를테면 어선의 종류와 운용 방법, 어부의 삶이나 어종 등- 창작에 유리하겠다며 부러워해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부산이라고 하면 바다를 먼저 떠올리는 건 이해하겠는데 부산사람은 대부분 배를 타거나 어업에 종사할 거라는 무지에 아연실색했다. 문화적 상대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작가의 입에서 나온 말이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서울 촌놈’이라는 말은 서울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라는 뜻일 테다. 부산시의 자치구 수는 16개로 서울시 자치구 25개의 절반을 상회하지만, 바다를 낀 한적한 소도시쯤으로 여긴다는 뜻이었다. 7개 광역시는 물론 각 시도별로 고유한 문화와 독특한 향기, 그 지역이 아니면 지닐 수 없는 역사와 품격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미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 서울·경기 지역에 집중된 상황에서 상대적 우월감과 열등감이 존재한다는 건 우스개처럼 여겨진다. 서울에 살다 직장 문제로 지방으로 옮겨온 분 중에 마치 귀양이라도 온 선민처럼 말할 때는 실소를 금치 못한다. 수도권 집중을 염려하는 지방민들도 내 자식은 서울로 진학하고 취업하길 바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몇 년 전, 답답한 마음에 지방 소외 문제를 울산을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 「떼까마귀」에서 다루어 보기도 했었다. 

  메가시티 집중 현상은 세계적인 흐름이고, 나라마다 사회문제로 대두된 게 사실이다. 그 배경에는 정치·경제적 기득권과 이권 문제가 얽혀 있어 단번에 풀어내기는 어려울 테다. 유수 대학이 서울에 집중돼 있으니 기업들이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수도권에 사업체를 세우게 되고 결국 젊은이들이 그곳에 더 몰려들고 비싼 집값 문제와 비혼 및 단산의 결과를 낳게 된다. 국가의 미래와 존립마저 염려되는 시점이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는, 한 국가의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지방 분권이 확립돼 고유의 문화를 잘 간직한 나라가 부러울 수밖에 없다. 여행했던 국가 중 내겐 스페인이 그랬다.

 

  스페인은 유럽의 남서쪽 이베리아반도에 위치한 나라로 카탈루냐, 발렌시아, 안달루시아, 아라곤 등 17개 자치 지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자치 지방마다 주요 도시를 품고 있는데 그 풍경과 향기가 전혀 달라서 미학적 상대성이 짙은 매력으로 다가왔다. 현 수도이자 왕궁이 있어 정치의 중심이 된 마드리드, 경제와 금융의 허브인 바르셀로나, 종교적 성지 세비야, 이국적 분위기로 관광의 핵심이 된 그라나다, 예술의 신흥도시 빌바오, 지중해를 품은 휴양 도시 말라가 등 수많은 도시가 서로 다른 보석처럼 각각의 빛을 발한다. 각각의 보석들이 발하는 빛은 ‘스페인’이라는 커다란 하나의 보석에 모여진다. ‘따로 또 같이’의 가치가 잘 지켜지는 곳이었다. 

  스페인의 주요 도시들을 여행하는 내내 이전 도시와 전혀 다른 새로운 아름다움에 매번 감탄했다. 도시마다 고유한 특성을 품고 있었고, 어느 한 도시가 여러 분야를 독식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지 않았다. 나는 나여서, 너는 너여서 그 가치를 존중받는 아름다운 땅이었다. 스페인은 유럽에서 가장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고 여러 왕국으로 나뉘어 있다가 1500년경에야 하나의 왕국으로 통일되었지만, 각각의 고유성은 훼손되지 않고 지금껏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한 도시의 사회·경제적 역량을 고르게 발전시키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할 건 의식의 변화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눈은 이미 서열화에 익숙해 있다. 서열화 의식 때문에 끊임없이 상대적 우월감과 열등감을 오가기도 한다. 인간이든 도시이든 각각의 고유한 아름다움을 인정하는 눈이 필요할 테다. 우리를 만드시고 도시와 국가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나는 나여서 그리고 너는 너여서 감사하다고 고백할 수 있으면 좋겠다. 서울이어서, 부산이어서, 광주여서, 그리고 울산이어서 아름답다고 인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 지역 교회와 지방 교회 사이에 사역자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도시 교회와 시골 교회가 서로 협력하는 건 신앙 공동체적 의식을 넓혀가는 중요한 일이 될 테다. 나아가 한국교회와 해외 선교지와의 교류도 활발하게 이루어지면 좋겠다. 하나님 앞에서 서로를 대등한 협력적 파트너로 인식하는 일이 먼저 필요할 것이다. 교회 연동을 통해 아웃리치, 봉사 등의 사역을 함께 감당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활성화도 필요해 보인다. 

 세계 어느 땅이든 우열을 가리지 않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국가나 지역적 서열화 없이 서로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자. 신앙은 현실 인식 위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