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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이분법의 상처, 모스타르

 

   얼마 전 문학 모임에서 한 분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절대 선’을 설파해 참석자들이 피로를 느낀 일이 있었다. 정책 사안에 따른 호불호가 아니라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니까 모든 정책이 옳다’는 논리는 이분법에 가까워 보였다. 흑백논리에 근거한 이분법은 객관성과 다양성이 결여돼 지나치게 단순한 결론을 만든다. 더욱이 적대적 그룹을 만들어 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기도 한다. ‘내가 지지하지 않는 정당이니까 모든 정책은 악하다’는 결론에 이르면 사회적 오류를 낳는다. 이분법을 개인에게 적용하면, ‘저 사람의 어떤 행동이 싫다’가 아니라 ‘저 사람이니까 모든 행동이 싫다’라는 논리가 되는 것이다. 세계를 여행하다 보면 무지한 이분법을 도처에서 목격하게 되는데, 그 참상이 가장 선명했던 도시가 ‘모스타르’였다.

200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스타리 모스트”(STARI MOST, OLD BRIDGED_오래된다리) 교류와 소통에서 단절과 증오를 거쳐 협력과 화해의 상징으로 거듭났다. (사진_위키백과)

   모스타르는 보스니아(공식 국가명칭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남부에 위치한 중세도시로 옛 헤르체고비나의 수도였다. 과거 여러 차례 내전을 겪으며 입은 상처가 뚜렷하게 보이는 곳이었다. 소련 체제 아래 연방으로 묶였던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내전이 일어났다. 한 국가 안에서 보스니아계와 세르비아계 간, 즉 민족 간 발발한 전쟁이 종교·경제문제와 맞물려 ‘인종청소’라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보스니아계 민족이니까 무조건 싫다’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민간인들을 죽이고 또 죽이는 집단학살의 참상을 낳았다. 세르비아계와의 내전이 격화된 후 나토(NATO)의 개입이 있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우리 민족만이 옳다는 민족주의적 이분법이 초래한 불행이었다. 

 모스타르 시내 건물 외벽에는 지금도 뚜렷한 탄피 자국들이 내전의 흉터처럼 남아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의 하나로 불리는 ‘스타리 모스트’의 우아한 자태를 바라보며 그 땅의 상처에 마음이 아팠다. 네르트바 강 위에 우뚝 솟은 ‘스타리 모스트’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으로 평화를 상징한다고 했다. 청록색의 맑은 강물 위로 건축적 미학과 역사적 아픔이 함께 어른거렸다. 모스타르의 여름은 화창했고 도시 풍경은 소박했지만, 이곳이 정말 유럽인가 싶을 만큼 가난했다. 소매치기도 많았고 하릴없이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청년들도 많았다. 올드타운에서 유고슬라비아 시대 골동품을 구경하거나 터키식 커피를 한 잔 마시며 걷다 보면 ‘내전 박물관’에 닿게 된다. 내전 박물관에는 대량 학살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한국전쟁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1992년~1995년 보스니아 전쟁과 대량학살에 관한 자료가 전시된 곳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모스타르는 대부분의 관광객이 세계적인 휴양지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로 가는 길에 잠깐 거쳐 가는 도시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관광지를 찾는 사람들에겐 초라한 곳일 뿐이다. 쉬러 가서 누가 상처로 얼룩진 고통을 보고 싶겠는가. 하지만 글쓰기에 있어 기쁨보다 슬픔이 주는 진폭이 더 컸기 때문일까. 윤슬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아드리아해의 두브로브니크보다 상처로 얼룩진 모스타르가 내겐 훨씬 강렬하게 다가왔다. 유럽의 화약고라 불려온 발칸반도의 아픈 역사가 함축된 곳이 모스타르인가 싶었다. 

  상처로 얼룩진 도시와 백성들의 눈물이 고인 그 땅을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졌다. 죄성으로 가득한 인간이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 복음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뿐일 테다. 그 땅이 복음으로 덮이기를, 그리하여 복음 안에서 상처가 회복되기를 기도했다. 무슬림이 많은 보스니아에도 기독교 선교사들이 파송되어 있고 현재 20여 개의 교회가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들었다. 상처가 깊은 곳이라 겸손한 삶으로 화해의 십자가를 보여 주어야 한다는 선교사님의 설명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선교사님의 눈으로 본 그 땅의 아픔을 언젠가 소설작품으로도 창작해 보고 싶었다. 어떤 분들은 내게 질문하곤 한다. 왜 소설에는 행복한 이야기가 드물고 고통에 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냐고. 그때마다 나는 대답하곤 한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고난 속에서 숭고함을 선택해가는 존재이고, 소설은 그런 인간을 함축하기 때문이라고. 작가는 인식 가능한 삶을 소설로 쓸 수밖에 없는데, 글 속에서 추구하는 소망조차 절망이 전제될 때 걸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은 내 공간이나 내 시간 밖의 세계를 만나는 일이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물리적 시공간만 다를 뿐 그 속에 몸담은 인생의 원리와 속성은 같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 결론이 나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통해 인간의 죄성과 오류의 역사를 반복해서 보고 듣고 깨닫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누구인가를 기억하게 하는 양약이 된다. 하여, 여행은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떠나볼 가치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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