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
황량한 안뜰 밭에 거무튀튀한 나무 십여 그루가 제 모양대로 서 있다. 한겨울 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불평이라곤 없다. 그저 제 자리를 지키는 게 최선의 성실임을 아는 모양이다. 저 어래산 골짜기의 얼음장이 풀렸는가. 발밑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용케도 잘 감지했는지 서둘러 저들만의 교향곡을 연주할 채비를 서두른다. 나도 덩달아 집 뒤뜰에 모아둔 퇴비를 실어 내느라 분주해졌다. 저들의 밑둥치에 골고루 흩뿌리자 배고픈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듯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다.
일주일 뒤, 그동안 은밀하게 준비했던 교향곡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키 작은 것에서부터 뒷짐 졌던 노거수에 이르기까지 손놀림이 재바르다. 하얀 움이 돋는가 싶더니 밤새 도툼도툼 제 음량을 조율한 듯하다. 굳이 깃을 세운 화려한 연미복을 갖추지 못했다고 예를 모르는 건 아니다. 저마다 동두렷하게 3열로 도열한 품새가 어여쁘다. 푸른 잎사귀보다 먼저 가녀린 현의 가락이 비올라의 음율 같이 나지막이 세상 밖으로 곡조를 뽑아낸다. 근처 텃밭의 감나무, 석류나무들은 아직 겨울의 깊은 잠에서 도무지 일어날 기색조차 않는데….
근동의 호동댁, 칠국댁도 허리 굽은 몸으로 봄나들이 나왔다. “저 꽃도 우리 몇 해를 더 볼란동” 두 할매의 쓸쓸한 눈빛이 흰구름 보다 허허롭다. 최선의 부지런함으로 살았던 인생의 험로를 모르는 바 아니다. 어쩌면 오늘 이 나무들도 저 할매의 천성을 본받았는가. 곡조는 건너편 윗뜸부터 아랫뜸으로 현란하게 울려 퍼진다. 이 강산, 이 산하를 수려하게 화음으로 물들일 요량이다.
어느새 여리고 가냘픈 낙화가 하르르 제 발등을 덮는다. 어느 노랫가락인들 귀로 들어가 가슴에 쟁여지는 법,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다.
-Ⅱ-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나 치고 지고
뉘 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리
- 이호우 「살구꽃 핀 마을」 중
그래서일까. 지금도 길을 가다 살구나무가 있는 집은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걸음을 멈추고 그 집을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다. 주인은 분명 은은한 향내를 간직한 어르신일 테다. 대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아무런 의심도 없이 마루에 앉게 하고 다감한 이야기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만 같다. 하얀 꽃이 만발한 봄날이면 더욱 좋겠다. 따뜻한 차 한 잔을 사이에 두고 환장할 개화를 바라보며 무언의 깊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으리라.
옛말에 오래 사귄다고 좋은 벗이 아니라, 처마 밑에 잠깐 비를 피하다 만난이라도 평생 막역한 지기(知己)가 될 수 있다고 했잖은가. 그저 차 한 잔 마신 후 말없이 목례를 나누고 그 집을 나선다 해도 여운의 곡조는 평생을 울릴 수 있겠다.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좇아 수많은 인파가 공원으로 나선다 해도 결코 부러워하지 않는 이 은은한 기품. 오늘은 목이 긴 호리병에 꽃가지 하나 꺾어 서안(書案)에 올려두면 그만이겠다. 정좌하고 옛글을 읽는다면 거기에 샛노란 살구 향내가 담장을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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