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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땅의 끝은 바다의 시작, 리스본"

   어릴 때, 아버지가 여덟 살 생일 선물로 사 주신 커다란 지구본을 매일 들여다보곤 했다. 어느 날은 우리나라와 대척점에 있는 아르헨티나를 찾아보고, 또 어느 날은 고개를 꺾어 남극 땅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지구본만으로 만족이 안 되면 큰오빠의 교과용 컬러판 사회과 부도를 펼쳐보기도 했다. 모든 대륙 모든 나라 모든 도시가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유독 역사와 지리를 좋아했던 이유도 세상을 향한 호기심 때문이었을 테다. 지구본과 지도책만으로 세상을 품은 듯 행복했었다. 

  한번은 유라시아대륙 극동에 위치한 한국의 반대편 즉, 대륙의 최서단을 유심히 바라본 적이 있다. 유라시아대륙의 최서단 지점은 포르투갈 리스본 근처였다. 그 땅은 유라시아대륙을 지나온 고단한 태양이 대서양 아래로 숨어들어 잠드는 곳이란 상상에 마음이 갔다. 광활한 유라시아대륙의 산맥들과 고원들, 사막들과 강들을 넘어 언젠가 그 땅에 가보고 싶었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 지구본과 지도책만으로 막연히 그려보던 곳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리스본 땅을 처음 밟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아버지의 얼굴과 지구본이었다.

  리스본은 포르투갈의 수도로 대서양에 면한 항구도시이다. 베란다에 후줄근한 옷가지를 널어놓은 낡은 아파트들이 도시의 상징처럼 첫 시야에 들어왔다. 서유럽에 익숙해진 눈으로 바라보면 포르투갈은 멋진 관광지는 아니었다. 그들의 진면목은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이베리아반도에 나란히 붙어 있으면서도 옆 나라 스페인과는 풍경과 분위기가 사뭇 달라서 놀랐다. 스페인이 봄이라면 포르투갈은 가을, 스페인이 아침이라면 포르투갈은 저녁의 심상(心像)에 가까웠다. 남유럽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어딘가 쓸쓸하고 깊은 분위기가 감돌았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시8:3)

  그들의 전통 민요 ‘파두(Fado)’를 들으며 포르투갈 민족의 깊은 한(恨)을 느꼈다. 슬픔, 관조, 고독 등의 감성이 강하게 묻어나는 파두는 대서양으로 나간 뱃사람들에게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16세기 대항해시대의 포르투갈을 제국주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그들은 침략자지만, 개인의 삶으로 바라보면 먹고 살기 위해 바닷길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죽고, 병들고, 희생당해야 했던 아픈 인생들인 것이다. 유라시아대륙 안에서 거리상 가장 먼 나라여서 민족도 역사도 서로 얽힌 적이 없는데 집단감성이 한국과 비슷해서 신기했다. 

  테쥬강 하구에 세워진 리스본은 페니키아어로 ‘안전한 항구’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람의 땅 중에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곳이 있을까. 대항해시대에 ‘바스코 다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으로 경제적 부흥을 이루었지만, 영국에 패권을 내주면서 리스본의 전성시대는 저물고 말았다. 더욱이 1755년 진도 9의 대지진이 발생하면서 도시는 완전히 폐허로 전락하게 되었다. 절망이 도시 전체를 덮쳤고, 파두의 슬픈 어조는 모든 것을 잃은 시민들의 감성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은 절망하지 않았다. 건물들의 잔해로 바닥 돌을 만들어 광장과 거리에 다시 다져 넣으며 새로운 꿈을 꾸었다. 직접 가서 시각을 바꾸어 보니, 리스본은 유라시아대륙을 지나온 고단한 태양이 지는 도시가 아니라 지구를 돌아 다시 새로운 태양이 뜰 것을 기대하는 도시였다. 유라시아대륙의 서쪽 끝은 곧 대서양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시민들은 놓치지 않은 것이다. 그들에게 바다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렇게 다시 일어나 바다로 나갔고 살길을 모색했다. 

  리스본의 속성을 한눈에 느낄 수 있는 풍경은 ‘산타주스타’에서 내려다보는 야경이었다. 도시 위로 청회색 하늘이 어둠에 잠겨갈 때 거리에는 하나둘 노란 가로등이 켜진다. 노랗게 물든 거리가 그렇게 따뜻해 보일 수 없었다. 따스한 풍경이 여행자의 마음에 위로로 번져왔다. 얼마간 지내며 느껴보니 절망 앞에서 하나둘 소망의 등을 켜는 도시가 리스본인 듯했다. 낯선 도시의 풍경을 보고 위로를 받은 건 신기한 경험이었다. 경탄을 불러일으키는 화려한 도시에서 느끼지 못한 감성이라 더 그랬다.

  자신을 폐허로 만들어 놓는 절망이 엄습할 때 누구든 당당하기는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자아가 초라해지고 슬픔에 잠기게 된다. 하지만 어두운 내면에 하나둘 소망의 등을 켤 수 있다면 여전히 그(그녀)는 아름다운 사람인 것이다. 산타주스타에서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보던 그 저녁, 나도 리스본을 닮은 사람이길 기도했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아들이 여덟 살이 되었을 때 커다란 지구본을 사 주었다. 지구본을 이리저리 돌려보는 아들의 호기심 어린 눈을 보면서 아버지를 생각했다. 왜 그때 지구본을 선물해 주셨는지 여쭤보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아버지는 분명, 사랑하는 딸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와 그 속에 깃든 다양한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랑하길 바라셨을 것이다. 이해 없이는 사랑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아셨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