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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문화/신앙에세이

"통찰의 프리즘, 트리어"

 

 만약 이삼십 대에 오십 대의 통찰력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가끔 상상해 볼 때가 있다. 아마 일의 실수나 오류를 조금은 줄였을 테고,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훨씬 넓었을 테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도 한결 신중했을 테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시간을 따라 제련된 깊은 눈빛이 어떻게 젊은이의 것이 될 수 있겠는가.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라는 고린도후서의 말씀처럼 나이 듦에 따른 유익에 감사할 때가 많다. 정신적·영적 성숙이 나이와 정비례하지는 않겠지만 분명 상관관계는 있는 듯해서다. 사람은 자신의 나이만큼 넓어진 프리즘을 통해 인생을 반추할 수 있고 경험에 따른 통찰력을 지니게 되는 것 같다. 연로한 어르신들 앞에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존경해야 할 이유기도 하다. 

  그런데 여행지 중에도 깊은 역사를 통해 방문자에게 통찰의 프리즘을 선사하는 곳이 있다. 내겐 독일의 소도시 트리어가 그런 곳이었다. 트리어는 라인강의 지류인 모젤강 서안에 있는 아주 작은 도시이다. 모젤강 유역은 세계적인 청포도 생산지로 주변이 온통 푸른 포도밭이다. 도시를 감싼 언덕과 산이 포도밭으로 덮여 있어서 한낮의 트리어는 화창한 햇살 속에 한 폭의 인상주의 풍경화처럼 반짝인다. 풍경에 오롯이 잠긴 여행자들은 예외 없이 평안함을 느끼면서 이 작은 도시에 오래 머물고 싶어 한다.

“포르타 니그라” 트리어로 들어오는 성문으로 로마제국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트리어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하여,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불린다. 고대에는 로마제국이 정복한 게르만족의 땅, 이른바 갈리아 지역의 수도였다. 중부 유럽의 핵심이자 무역의 중심지로서 로마 제2의 도시로 부흥했었다. 당대의 원형 극장이나 황제의 목욕탕, 포르타 니그라 등의 유적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이 중 광장 북쪽에 있는 포르타 니그라(라틴어로 ‘검은 문’이라는 뜻)는 트리어로 들어오는 성문이었는데 로마제국 당대 위상을 잘 보여 준다. 이천 년을 견디며 묵묵히 서 있는 성문은 시간에 바래다 못해 검은색으로 변해 ‘포르타 니그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성벽은 다 허물어지고 홀로 남은 성문 앞에 섰을 때 아득한 시간의 향기가 묻어왔다. 흘러간 시간 저편, 성문을 통해 입성하는 로마 군인들의 군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하지만 고대 로마의 영광은 이제 그저 검은색의 빛바랜 기억으로만 존재하고 있었다. 세계 제일의 군사 권력도 시간에 떠밀려 한 줌 안개처럼 흩어진 것이다.

  그런가 하면 중세에는 트리어가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 도시로 부상했었다. 이웃 도시 마인츠, 쾰른과 더불어 3대 제후국으로 황제 선출권을 가진 대주교를 배출했다. 당연히 신성로마제국 안에서 종교 권력에 따른 도시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었다. 

광장 중앙, 로마네스크 양식의 거대한 트리어 대성당이 중세시대 트리어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광장 중앙, 로마네스크 양식의 거대한 트리어 대성당이 중세 시대 트리어의 위상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내부에 거대한 돔과 화려한 조각품들로 가득한 대성당이 중세에는 현재의 네 배 크기였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짐작조차 어려웠다. 하지만 당대 하늘을 찌르던 대주교의 종교 권력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젠 시대의 유적지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었다.

  트리어 광장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돌려 조금 걷다 보면 특이한 유적지가 나타난다. 근대 사회주의 철학자이자 사상가 칼 마르크스의 생가가 보존돼 있다. 그가 트리어 태생인 줄 모르고 갔다가 깜짝 놀랐다. 생가 앞에는 거대한 동상이 있는데, 칼 마르크스 탄생 이백 주년을 기념해 중국에서 헌납했다고 한다. 

  트리어가 관광지로서 비교적 덜 알려진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중국인이 성지 순례하듯 생가에 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그들에게는 ‘자본론’의 저자인 칼 마르크스가 사상의 원류로 여겨지는 듯했다. 계급 투쟁을 통해 사회가 진보한다는 그의 사관이 근대 사회를 휩쓸면서 인류는 크게 영향을 받았고, 이념 전쟁으로 수많은 피도 흘려야 했다. 하지만 칼 마르크스의 사상도 고통받는 인류에게 해답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증명되고 말았다.

  작은 광장을 중심으로 고대와 중세, 근대의 유적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트리어가 내겐 특별하게 다가왔다. 광장 중앙에 서 있으면 이천 년의 역사가 하나의 프리즘 안에 고스란히 담기는 것이다. 하여, 트리어의 매력은 저녁 무렵 석양이 도시를 붉게 물들이기 시작할 때 절정에 이른다. 흐릿한 어둠 속으로 잠겨가는 고대의 성문과 중세의 대성당, 근대사상가의 동상은 인생의 유한성을 뚜렷하게 보여 준다. 군사 권력도, 종교 권력도, 사상 권력도 잠깐 피었다 지는 들풀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게 된다. 각각 자기 시대의 영광을 상징하는 세 유적은 저녁이면 모젤강의 저녁 안개에 쓸쓸히 잠겨버리는 것이다. 세계를 장악했던 로마제국과 신의 나라로 불렸던 신성로마제국이 그러했듯 세계를 휩쓴 유물론적 변증법도 크로노스의 시간 속으로 빠르게 흩어져가고 있다. 영원한 건 하나님 안에서의 이 순간, 카이로스의 시간뿐임을 저절로 묵상하게 된다. 평범한 순간이 영원이 될 수 있다는 건 크고 놀라운 비밀이 아닌가.

  트리어의 저녁 풍경 속에서는 누구든 인생의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이삼십 대의 젊은 여행자에게도 자신의 유한한 삶을 자각하도록 이끌어 주기 때문이다. 참된 지혜는 분명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유한성을 깊이 통찰하는 겸손과 연결되어 있을 테다. 하나님 앞에서는 천 년이 하루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는 동시에, 내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을 천 년의 무게로 느낄 수 있다면 이삼십 대의 청년이라도 그(그녀)는 지혜로운 사람이 분명하다. 

  여행은 눈앞만 보며 살던 사람들에게 통찰의 프리즘을 선물하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작고 오래된 도시 트리어는 충분히 매력적인 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잠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