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나는 교회 성가대원으로 섬기게 되었다. 성가대 소속 실내악팀에서 플루트 연주로 15년간 봉사하다가, 다른 부서로 옮겨간 지 8년 만에 다시 성가대 찬양팀에 합류했다. 성가대원의 가장 큰 유익은 주일 예배에서 드린 찬양이 한 주간 내내 귀와 가슴 속에 울려 퍼진다는 점일 테다. 주의 성호(聖號)를 담은 선율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일상의 은혜를 누리는 것이다. 관현악기들의 어우러짐 속에 빚어지는 실내악의 하모니 못지않게, 각자의 음역이 자아내는 음성의 화음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음악으로 찬양하고 일상을 누리는 건 더없이 행복한 일이다.
‘음악’이라면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계단 위 초록색 대문’이다. 유년 시절, 커다란 바이엘 악보책을 들고 오후 세 시면 찾아갔던 피아노 선생님의 집이었다. 전공자는 아니었지만, 가정집에서 동네 아이들에게 피아노 기초를 가르쳤던 선생님은 늘 우아한 원피스 차림에 은은한 화장을 하고 계셨다. 집은 정갈했고 화병에는 늘 꽃이 꽂혀 있었다. 동네 친구들과 놀이에 푹 빠져있다가 후다닥 달려가도 초록색 대문 앞에만 서면 이상하게 차분해지곤 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예닐곱 살 꼬마에게는 초록색 대문이 일상에서 음악의 세계로 건너가는 통로로 보였던 것 같다. 음악의 세계란 일상보다 고아하고 특별한 영역이라 여겼던 게 아닐까 싶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뒤,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로 향하면서 초록색 대문이 떠오른 건 그 도시가 온통 하나의 음악 세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잘츠부르크는 오스트리아 서부의 작은 도시로, 클래식 음악의 성지로 알려져 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태어나고 자란 이곳은 거리와 건물, 기념품, 심지어 초콜릿까지도 그와 관련된 음악적 유산을 품고 있었다. 인구 15만 명 정도의 작은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음악 콘텐츠 덕분에 매해 수많은 관광객이 몰려든다. 특히 7월과 8월에는 음악 축제가 열려 오페라, 독주회, 연극 등 이백여 회의 예술 공연이 펼쳐진다. 이 기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연주자들이 모여들며, 대축제극장, 모차르트 하우스, 음악 학교 등에서 주요 공연이 열린다. 그 외에도 잘츠부르크 시내 곳곳에서는 다양한 공연이 이어지고, 음악을 사랑하는 비전공자들도 거리나 카페에서 자유롭게 버스킹(Busking)을 즐기며 연주자 혹은 관객으로 참여한다. 비전공자들의 공연은 음악적 완성도가 다소 부족할지라도 자유롭고 편안한 기쁨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여름의 잘츠부르크는 거대한 공연장이 되어 일상과 음악이 하나가 되는 특별한 순간을 선사한다.
이곳에서 음악의 중심은 단연 모차르트였다. 폴란드의 바르샤바가 쇼팽을 추모하고 체코의 프라하가 드보르자크를 자랑하듯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는 모차르트를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체르니 30번을 배우는 한국 아이들이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을 곧잘 연주하듯 그곳 시민들은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이나 소나타를 기본적으로 연주할 줄 알았다. 그들에게 클래식은 ‘고전적 형태의 장르 음악’이 아니라 ‘일상에서 경험하고 누리는 음악’이었다. 일상과 음악의 경계는 모호했고, 음악은 그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흐르고 있었다.
잘츠부르크를 여행하면서 바라보니, 음악은 경계 너머의 특별한 영역이 아니라 온전히 일상의 열매였다. 고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배경이 된 곳도 잘츠부르크인데, 가정교사 마리아와 폰 트랩 대령의 아이들이 일상에서 음악을 자연스럽게 누리는 모습이 그 예라 할 수 있겠다. 영화 속 일상 음악인 <도레미 송>과 <에델바이스>는 이미 세계인들의 귀와 가슴에 깊이 각인돼 있지 않은가.
유년 시절을 다시 회상해 보면, 음악 세계는 소박한 평상복 차림의 엄마가 방을 닦으며 부르던 찬송가와 노래들이었다. 엄마는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지금까지 지내온 것> 등의 애창 찬송가와 함께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 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추억의 가사로 시작하는 <동무 생각>, ‘♬봄 처녀 제 오시네. 새 풀 옷을 입으셨네♬’ 시적 가사를 가진 <봄 처녀> 등의 가곡도 자주 부르셨다. 그 찬송가와 가곡들은 엄마의 음악 세계였고 그 품에서 자란 내 음악 세계이기도 했다. 그 일상의 음악들이 나의 정서를 형성하고, 하나님을 향한 경배와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을 만들어 주었음을 느꼈다.
한국 사회에서는 종종 음악을 전공자의 것으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연회색 구름 위로 분홍색 노을이 스밀 때 저절로 우러나오는 감탄이 한 편의 시가 되듯, 일상에서 우러나는 찬양과 노래도 훌륭한 음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이들이 잘츠부르크 시민들처럼 하나님이 주신 음악으로 일상을 누렸으면 좋겠다.
비록 나는 플루트 전공자는 아니지만, 지난날 실내악팀에서 봉사하면서 찬양의 은혜를 누렸던 날들이 참 감사하다. 올해도 성가대에서 찬양팀원으로 그 축복을 충만하게 누리기를 기도한다. 성가대의 찬양은 개인의 신앙고백을 넘어, 공동체의 기쁨으로 확대된다. 그 기쁨은 감정적 기쁨이 아닌 그리스도와의 관계적 기쁨으로 날마다 깊어져 갈 것이다. 하루하루 일상의 희로애락 속에서 건져내는 진솔한 고백 즉, 주를 향한 내 마음의 변함없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찬양이자 가장 아름다운 음악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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