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관세 부과와 독단적인 외교정책이 세계를 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세계 정치와 경제는 거센 바람에 휘말린 듯 급격한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미국 우선(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슬로건 아래, 기존의 다자주의적 가치와 국제 협력의 길을 뒤로하고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두는 정책을 표방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미국 내외에서 적지 않은 논란을 일으켰다. 어떤 이들은 미국이 그간 유지해 온 ‘우아한 위선’을 벗어던지고 ‘정직한 야만’을 택했다고 꼬집기도 한다. 그들의 입장이 어느 정도 이해되면서도, 미국의 이타적 건국 이념을 떠올릴 때마다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그 이념이 살아 숨 쉬는 곳, 워싱턴 D.C.에서의 여행 기억이 또렷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워싱턴 D.C.는 단순한 미국의 수도가 아니었다. 이 도시는 미국이 어떤 가치 위에 세워졌는지를 고백하는 상징적 공간과도 같았다. 거리 곳곳에서 마주치는 건축물과 기념물들은 미국의 기독교적 건국 이념과 민주주의를 기리고 있었다. 그 하나하나가 마치 잊지 말아야 할 가치를 상기시키려는 듯, 여행자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넸다.
미국 건국의 핵심 가치가 집약된 대표적인 장소는 링컨 기념관이었다. 워싱턴 기념탑과 마주 선 이곳에서 여행자들은 남북 전쟁의 교훈을 되새기곤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이끈 연방의 재건은 단순한 국가의 재통합을 넘어, 모든 인류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는 기독교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투쟁이었다. 기념관의 하얀 계단을 오를 때, 링컨 동상은 마치 내게 자유와 평등을 위한 이 길을 계속 걸어가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기념관을 돌아보는 내내 그가 남긴 게티즈버그 연설문이 계속 뇌리를 맴돌았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그의 말은 시대를 넘어,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리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곳은 1963년 8월 28일, 흑인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가 인권 궐기 대회 마지막 날에 ‘나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연설한 장소여서 그 의미가 더 크게 와 닿았다. 그 연설 후 워싱턴 대행진을 통해 시민권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았던가. ‘자유와 평등을 바탕으로 한 평화로운 공존’을 꿈꾸며 이 도시를 행진했던 그 시대 약자들의 염원이 내 마음으로 전해지는 듯했다.
백악관은 또 다른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그곳은 단순히 대통령의 거주지가 아니라, 민주주의 심장을 상징하는 듯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과 그의 아내가 예전에 살던 집을 본떠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은 새로운 집을 백악관(white house)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창조주에게 바쳐진 땅의 대통령’이라는 가치관은 그 자리가 국민을 위한 헌신과 봉사의 자리임을 깊이 실감하게 했다. 무엇보다 백악관이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지도력’이었다.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결정들이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은 실로 크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국 대통령들의 정치적 결정은 기독교적 가치관에 뿌리를 두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그 의무는 명확해 보였다.
국회의사당 역시 중요한 상징적 장소였다. 미국 연방 정부의 입법부인 미국 의회가 있는 건물로, 워싱턴 D.C.의 내셔널 몰 동쪽 끝에 있었다. 이곳 역시 법안 통과와 정책 결정이 단순한 절차가 아닌 국민과 세계인을 위한 공공선의 실현, 즉 민주적 절차를 통해 사회 변화를 이끌어가야 할 영역으로 보였다. 국회의사당의 하얀 돔을 바라보며, 나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논의가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의 이념에 근간을 두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생각했다. 링컨 기념관이나 백악관처럼 국회의사당 역시 흰색을 바탕으로 한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져 있었는데, 내겐 그 모습이 엄정한 자유 수호자의 느낌으로 다가왔다.
워싱턴 D.C.의 거리마다 서 있는 기념비들은 그 자체로 기독교적 가치와 민주주의 정신을 기리는 유물들이었다. 내셔널 몰을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제퍼슨 기념관, 세계 2차 대전 기념관, 베트남 전쟁 기념관 등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이 기념비들은 각기 다른 전쟁과 갈등 속에서도 이타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했던 인물들과 사건들을 기리고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국가는 개인을 위한 존재여야 한다’라는 미국의 건국 이념이 시대를 초월해 여전히 살아있음을 느꼈다.
워싱턴 D.C.를 여행하며 그들의 이념과 자부심이 한편으로는 부러웠다. 수도 역사 200여 년이 넘는 세월에도 여전히 기독교적 건국 이념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행하는 어떤 정치든 선(善)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자유, 평등, 민주주의,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이타적 정신은 여전히 그곳에 뿌리 깊이 남아 있었다. 시대가 변하고 지도자에 따라 정치적 이념이 바뀌어도, 언제나 건국 아버지들이 꿈꿨던 길을 따라가라는 교훈을 그 도시는 전하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워싱턴 D.C.는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이타성의 방향을 일깨워주는 나침반과도 같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도 결국 자국민의 일자리를 보호하고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한 나름의 몸부림일 테다. 또 그가 창조 세계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뜻도 귀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강대국인 미국에 맡기신 특별한 사명이 간과되는 듯해 안타깝다. 자본주의적 이윤 추구를 넘어선 이타주의적 이상을 끝까지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각국의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공정무역 협정과 공동 목표 설정 등 글로벌 차원의 협력이 그리워진다. 공동체 정신이 가정이나 교회에만 국한되지 않고 사회와 국가, 세계로 확장되기를 바라는 건 과욕일까.
지금이야말로 세계의 평화로운 상생을 위해 기도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시1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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