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제는 친구와 태화강 근처에서 만나 점심을 먹고 잠깐 강변을 함께 걸었다. 봄꽃들이 만개한 강변은 향기로 가득했고, 바람도 불지 않아서 도시 전체가 달콤한 기운에 잠긴 듯했다. 꽃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태화강 수면은 투명한 햇살을 받으며 고요하게 반짝였다. 27년 전 낯선 울산으로 옮겨와서 적응하기 힘들 때마다 태화강에서 위로를 받곤 했는데, 삭막한 산업도시의 풍경 속에서도 태화강이 눈에 들어오면 생명의 향기를 맡은 듯 반가웠다.
강(江)은 종종 인생에 비유된다. 시간에 따른 변화와 흐름, 불가피한 여정, 과정에서의 수용성, 발원과 종착의 이미지, 평온과 격동의 교차, 생명의 상징성까지 인간의 삶과 흡사한 특성들 때문일 테다. 누구나 강 앞에 서면 일상의 번잡함을 내려놓고 삶의 의미를 반추하게 되는데, 그런 측면에서 세상의 모든 강은 그 흐름에 잇대어 사는 사람들의 생을 비추는 내면의 거울인 셈이다.
하여, 나는 여행할 때마다 한 도시가 품은 강을 꼭 찾아서 강변을 거닐어본다. 강마다 폭과 깊이, 경사와 유속, 물빛과 향기, 담아내는 풍경이 모두 다르다. 신기하게도 한 도시의 사람들은 그 도시의 강과 닮아있었다. 도시민의 얼굴에서 그 강의 물성과 향기와 이미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캐나다의 세인트로렌스강은 나에게 특별한 이미지를 남겼다. 북미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강에서 인생 서사를 읽었기 때문이리라.

세인트로렌스강은 미국 북동부의 슈퍼리어호에서 시작해 5대호를 지나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을 따라 흐르다가 대서양으로 흘러든다. 그 길이가 3,058km에 달하는 장대한 강이자, 5대호와 대서양을 이어주는 세계 최대의 수계이기도 하다. 캐나다 동부 여행은 세인트로렌스강과 함께 흐르는 여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이아가라 폭포에서부터 토론토, 몬트리올, 킹스턴, 퀘벡 등 캐나다 주요 도시들은 모두 세인트로렌스강을 품고 있으며, 시민들은 강에 잇대어 살아간다. 캐나다 최대 도시 토론토에서 시작해 동쪽을 향해 여행하다 보면 강이 계속 여행자를 따라 흐른다. 묵묵히 흐르는 장대한 강에서 나는 한 인간의 탄생과 성장, 고난과 영광, 그리고 임종을 지켜보는 듯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광활한 대지에 세인트로렌스강이 없었다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발원지인 메사비산맥에서 유년기를 보낸 세인트로렌스강은 5대호에 접어들면서 청년기를 맞이한다. 네 번째 호수인 이리호에서 다섯 번째 호수인 온타리오호를 향해 흐르던 강은 갑자기 거대한 절벽을 만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나이아가라 폭포가 되어 장관을 연출한다. 폭포의 장쾌한 낙수 모습과 포효하는 듯한 소리는 그 앞에 선 사람들의 영혼을 뒤흔든다. 하늘과 맞닿을 듯 솟구친 물줄기는 굉음을 내며 쏟아져 내려, 세상의 다른 소음을 삼켜버린다. 폭포의 새하얀 물보라 위로 무지개가 어른거리고 흰 새들이 날아오르는 순간, 마치 천국의 환영을 보는 듯했다. 한 인간의 생에서 가장 힘차고 빛나는 시기, 이삼십 대의 광휘를 나이아가라에서 보았다. 세인트로렌스강의 청춘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이후 평지를 흐르며 한결 넉넉해진 세인트로렌스강은 캐나다의 대도시 토론토와 킹스톤, 몬트리올, 트루아를 감싸안으며 광활한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시민들의 식수를 공급하고 기꺼이 그들의 휴식처가 되어준다. 세인트로렌스강 덕분에 이 도시들은 무역을 통해 항구도시로 번영했다. 특별히 천 개의 섬으로 이루어졌다는 킹스턴의 천 섬 지역에 이르면 강은 부모처럼 품을 열어 크고 작은 섬들을 안아 준다. 수많은 섬이 사랑받는 자녀들처럼 평안하게 떠 있는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 지점의 세인트로렌스강은 원숙한 안목과 이해로 세상을 품는 중년의 삶을 느끼게 했다. 강이 전하는 깊은 평온과 여유는 여행자에게 인생 후반기의 목적을 성찰하도록 이끌어 주었다. 사람들이 긴 여름휴가를 킹스턴에서 보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캐나다 동쪽의 오랜 도시 퀘벡에 다다르면 세인트로렌스강의 종착점이 가까워진다. 이 도시를 끝으로 강은 망망대해인 대서양으로 나아간다. 퀘벡은 프랑스계 주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으로, 영어가 공용어인 캐나다에서 유일하게 프랑스어를 주요 언어로 사용한다. 북아메리카 정복 당시 먼저 정착한 프랑스인들이 영국의 지배 아래에서 희생을 치르면서 정체성을 지켜낸 땅이기도 하다. 세인트로렌스강은 그 흐름 속에 열강들의 신대륙 침략과 전쟁, 탐욕과 희생, 무수한 피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이 지점에서 강은 더욱 잔잔해지면서 한층 웅숭깊은 모습을 보여준다. 퀘벡 올드타운에서 강을 바라보고 서 있는 사람들은 그 긴 여정을 지나 대서양으로 향하는 강을 바라보며 찬탄 대신 평안을 느낀다. 강은 이제 지난 흐름의 시간 속에 품어온 모든 것들을 기름진 삼각주로 남겨준다.
이 지점의 강은 알고 있는 듯했다. 인생의 목적은 투쟁을 통해 얻는 승리가 아니라 주어진 사명의 완수라는 것을. 세상을 향해 생명을 전해 온 시간이야말로 가장 밀도 높은 카이로스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광대한 대륙을 지치지 않고 묵묵히 흘러온 이유를 하류에 이른 강은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세인트로렌스강은 나에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하나님이 보여주신 자연계시처럼 느껴졌다. 한 번 흐르면 돌이킬 수 없는 게 시간이기에, 겸손히 사명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어릴 땐 성장의 기쁨을 누리고, 청소년과 청년의 때엔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실력을 쌓으면서 사명을 준비하고, 중년의 때엔 생명을 살리는 사명을 감당하고, 노년의 때엔 곁에만 있어도 안식이 되는 사람으로 존재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이 받은 참 사명이리라.
성경의 시편 기자는 노래했다.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16:6) 어제, 봄날의 태화강을 친구와 거닐며 울산을 사랑스러운 도시로 느끼는 내 모습에 새삼 놀랐다. 예전엔 삭막하게만 느껴진 도시였는데, 이제 다른 도시를 방문했다가 울산으로 돌아올 때면 도착 전 마음부터 푸근해진다. 어느새 태화강의 물성과 향기가 나의 일부가 되어 있기 때문일 테다. 구영리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태화강은 울산 시민들에게 언제나 넉넉한 생명력을 불어넣어 준다. 나 또한 하나님이 내게 줄로 재어주신 이 도시에 생명을 불어넣는, 강을 닮은 사람이 되길 기도한다.
“사랑은....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전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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