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새해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2025년도에는 공의와 사랑이 바로 서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을사년에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있었다.
근대에 일어난 사건 중에 60년 전 을사년 1965년 6월 22일에는 한일 청구협정이 있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강제징용(1938-1945)에 대한 모든 배상 청구권을 포기하는 대신 3억 달러 보상금, 2억 달러 차관을 받았다. 그 당시에는 나라가 힘이 없고, 경제 개발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해서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마무리하였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너무나 많은 아쉬움이 있다.
그리고 120년 전 을사년인 1905년 12년 11월에는 일본 대표 이토 히로부미는 대한 제국과 을사늑약을 맺었다. 을사늑약은 일본이 대한 제국을 보호하겠다는 명목하에 맺은 한일 불평등 조약이다. 이 일로 ‘을사오적’이란 말이 생겼다. 대한 제국은 자주권이 박탈당하고, 결국 5년 뒤인 1910년에는 치욕적인 한일합방을 했다. 이때 국민의 마음이 흉흉하고, 견디고 힘든 세월을 보냈다는 의미에서 ‘을씨년스럽다’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새해가 밝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탄핵 정국으로 인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전반적으로 어렵고 힘들다. 참된 지도상은 실종되고, 권위도 무너졌으며, 여기에다 무안에서 제주항공 비행기 참사까지 일어나서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지금도 여전히 을씨년스러운 날이 계속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예수를 믿는 우리들은 더욱 영육으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외쳐야 할 부분은 외치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덮어야 할 부분은 덮으면서, 사랑과 공의를 바로 세우는 데 노력해야 한다.
‘하루’라는 선물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하루’라는 선물을 주셨다. 각자에게 매일이라는 하루가 소중한 기회임을 여기고, 일상에서 하루를 의미 있고, 삶의 가치를 높이며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하루를 가치가 있고,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첫째로, 목표와 행동을 연결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하루의 목표를 세우지만, 그 목표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 때 목표가 달성되게 된다. 그러므로 목표를 반드시 행동으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둘째로, 오늘 해야 할 일을 미루지 말고 시작하자.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기에 반드시 미루지 말고 신속하게 행동으로 옮기는 자세가 필요하다.
셋째로, 매사에 즐거움과 기쁨으로 행동하자. 우리가 행동으로 실천할 때는 힘들고 지루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해야 할 일을 기꺼운 마음과 자세로 접근하고 행동한다면 거기에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넷째로, 행동에서 나온 결과에서 성취감을 느끼자. 다소 부족할지라도 그것으로 성취감을 누리고 다음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면 그것이 동력이 된다. 각자에게 주어진 일상은 소중하고 의미가 있다. 효율적인 시간을 잘 유지하기 위해서는 삶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하다.
참된 지혜
프랑스의 어느 작은 마을에 있었던 이야기다. 성도들이 교회 마당에 있는 ‘예수님의 동상’ 건으로 중요한 회의가 열었다. 전쟁 중에 예수님의 동상이 폭격을 맞아 손과 발이 떨어져 나갔다. 그래서 성도들은 ‘예수님의 동상’을 어떻게 복구할 것인가에 대해 회의가 진행되었다. 어떤 성도는 흉물스러운 동상을 철거하고 다시 세우자고 주장했다. 또 다른 성도는 예수님의 손과 발이 떨어져 나간 부분만 복원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 안을 놓고 상호 간에 설전을 벌이며, 팽팽한 의견이 대립하는 중에, 어떤 성도님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 예수님의 상을 파괴된 그 모습 그대로 두고, 동상 아래에 작은 팻말에 예수님은 당신의 손과 발이 필요합니다. 적었으면 좋겠다’라고 제안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은 우리와 동역하기를 원하시고 있다고 함을 깨닫게 되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다 하시는 분이시지만 삼위 하나님이 혼자 일하지 않으시고, 우리의 손과 발을 통해 함께 동역하며 일하시기를 원하고 계심을 알아야 하겠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우리가 삼위 하나님과 함께 일을 할 때 착각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일상에서 생활의 승리나 열매는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라는 사실에서 출발해야 함을 알아야 한다. 며칠 전에 만나 고등학교 친구와 대봉감을 먹으면서 어린 시절 추억들을 이야기하다가 야생에서 자라는 고욤나무 이야기가 나왔다. 이 나무는 감나무와 거의 같으나 도토리만 한 작은 열매를 맺는다. 이 나무에 거름을 많이 주고, 잘 가꾼다고 하더라도 큰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방법이 있다. 그 나무를 잘라서 감나무에 접붙이면 그 나무는 좋은 감나무가 되어 큰 열매를 맺게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주님 원하시는 삶을 살려고 하면, 나는 죽고 내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살게 될 때 아름답고 건강한 예수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예수님과 함께 사역하는 곳에서는 어떤 역사가 일어날까?
첫째로, 영육 간에 치료의 역사가 일어난다. 마태복음 8장 1~4절에 나병환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어떤 나병환자가 나와서 엎드려 절하고 예수님에게 간곡하게 부탁했다. 내 병을 고쳐 달라고 간청했다. 그때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라고 하셨다.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함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삶의 현장에도 영육 간에 치료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긍휼히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접근하는 삶의 현장에 역시 위로와 치료가 일어날 것이다. 둘째로, 존중하는 마음에서 섬김의 역사가 일어난다. 요한복음 13장 1~15절에 예수님은 유월절 전에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깨끗이 씻어주시면서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하는데 너희 말이 옳다. 그런데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며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본을 보였노라고 하셨다.(참고 빌 2장) 이처럼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곳에는 존중하는 마음이 생긴다. 더불어 그 언저리에는 주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나타나게 된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고, 우리는 그의 지체들이다.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은사를 선물로 주셨다. 우리는 일상에서 다양한 재능과 은사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새해에도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지체로써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의 손발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길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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