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를 주신 삼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작심삼일’이라는 사자성어도 있지만 새해에는 다시 한번 중심을 잡고 ‘예배’, ‘훈련’, ‘전도’, ‘선교’, ‘봉사’에 풍성한 성과가 맺히기를 소망한다. 또한 무엇이든지 더 잘하자, 실수하지 말자고 결심하지만 일을 하고 나면 역시 실망스러운 일이 생긴다. 그래도 포기하지 말고 더욱더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자고 결단하고, 언제 어디서나 일상에서 선교적인 삶을 살아가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며칠 전에 이런 글을 읽었다. “아들 결혼식 날이었다. 신랑과 신부가 결혼식을 진행하는 가운데 양가 부모님께 인사 할 순서가 되었다. 하객들의 시선이 신랑의 구두끈에 갔다. 신랑이 긴장해서인지 구두끈이 풀려 있었다. 설사 신랑이 이 사실을 인지했다고 해도 수많은 하객 앞에서 허리 굽혀 구두끈을 고쳐 맬 수도 없는 분위기다. 그때 신랑 아버지가 이것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이고 아들의 구두끈을 매주었다. 신랑은 아버지를 내려다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참 당황스러운 분위기다. 멋쩍은 분위기 속에서 사회자가 회중들에게 농담을 던졌다. “신부가 우는 건 수없이 봤지만, 신랑이 우는 것은 처음 봅니다.” 사회자 덕분에 예식장은 웃음바다가 되었고, 분위기가 다시 업(up) 되었다. 아마도 그날 신랑의 흘린 눈물은 ‘구두끈을 단단히 묶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는 눈물’이 아니라 사랑하는 부모님 곁을 떠나는 순간까지 아버지께 수고를 끼친 미안함과 고마움, 감사함의 눈물이었으리라”
그렇다. 삶의 영역에서 크고 작은 실수가 일어나지만, 끝까지 보살펴 주는 끈끈한 사랑이 큰 울림을 주었다.
인생 여정에는 크고 작은 감동과 울림이 있다. 지난달에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무사히 산행하고 무사히 돌아온 김정열 집사님을 지면에 소개했다. 새해 아침에 그 집사님과 연관된 에피소드를 하나 더 소개하고 싶다. 버킷리스트 소망을 이룬 김 집사님과 잠시 대화를 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올라갔다가 산악인 박정헌 씨를 만나 영광스럽게도 그분과 사진을 찍게 되었다. 집사님은 히말라야의 전설적 인물을 만나 악수하고, 그분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리고 그분의 자서전 ‘끈’이라는 책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책을 구입하여 읽는 가운데 큰 울림과 감동을 받았고, 책에서 큰 우정과 찐한 사랑을 발견한 집사님은 그 책을 직접 구입하여 내게도 선물해 주셨다.
‘끈’은 2005년 1월 산악인 박정헌 씨와 후배 최강식 씨가 해발 6,335m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 등반에 성공하고 하산하던 중 조난을 당한뒤 구조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등반기다.
1971년 경남 사천 출생인 박정헌 씨는 1989년 19세의 나이로 초오유 원정에 참여하면서 히말라야 고산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그 후에 에베레스트, K2, 시샤팡마 등 히말라야의 내로라 하는 고봉을 등반한 그는 2005년도에 후배인 최강식 씨와 함께 히말라야 촐라체 북벽으로 사흘간의 고된 여정 끝에 정상에 올라 큰 감동과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정상에서의 기쁨도 잠시 이들에게는 하산이라는 큰 숙제가 남아 있었다. 무사히 등반을 마치자고 다짐한 두 사람은 서로의 몸에 밧줄로 단단히 묶고 하산하다가 그만 큰일을 당했다. 후배 최강식 씨가 순식간에 눈으로 덮여 있던 빙벽 사이 크레바스로 추락했다. 이 일로 인해 박정헌 씨는 갈비뼈 두개가 부러지고, 최강식 씨는 두 다리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처절한 사투를 벌어야 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박정헌 씨가 아무리 힘을 내어 끌어 올리려 해도 크레바스에 빠져있는 최강식 씨가 좀처럼 끌려 올라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두 발이 부러진 최강식 씨는 벽을 기어오를 수 없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의 외딴 산 중턱에서 어느 사람의 도움도 받지 못한 이 두 사람은 서로 연결한 끈을 놓지 않은 채 삶과 죽음 사이에서 3시간이나 사투를 벌었다. 그때 박정헌 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또 매달려 있던 최강식 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일반적으로 이런 상황이 되면 살기 위해서 몸과 몸에 연결된 끈을 끊어버린다고 한다. 박정헌 씨도 순간적으로 ‘연결된 끈을 끊어버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살아도 함께 살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한다’라는 절박함으로 살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지금 두 사람 몸에 묶인 끈은 생명줄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의지한 채 용기를 북돋아 주며 3시간 사투 끝에 최강식 씨가 간신히 절벽 위로 기어 올라올 수 있었다. 하지만 갈비뼈가 부러진 사람이 두 다리가 부러진 사람을 데리고 무사히 하산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큰일이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끝까지 서로 의지하며 하산하는 가운데 5일 만에 가까스로 구조대에 구조되어 극적으로 생환하였다. 하지만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추위에 노출되어 심한 동상으로 인해 결국 박정헌 씨는 여덟 손가락과 두 개의 발가락을 잘라냈고, 최강식 씨는 아홉 손가락과 발가락 대부분을 잘라냈다고 한다. 이들의 영광스러운 상처는 그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는 천금과 같은 생명의 소중함과, 사선에서의 깊은 우정을 증명해 주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과 ‘끈’으로 맺어진 인생이다. 하루하루 험악하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며 살아가고 있다. 설상 눈에 보이지 않는 ‘생명의 끈’을 맺고 살아가는 우리는 눈에 보이는 끈으로 맺고 살아가는 자들과 무엇이 다른 점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행동한다. 두 산악인의 진한 우정은 눈에 보이는 ‘끈’에 집중하며 행동했다면,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연결된 ‘끈’을 어떻게 유지하고 지혜롭게 살아가야 할까?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올바르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연결되어 살아가는 존재임을 늘 명심하고 기억해야 한다.
때론 인생을 살다 보면 ‘끈’을 끊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을 수 있다. 때론 몸 묶여 있는 끈이 부담스럽고 힘들 때도 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영원한 나의 보호자 되시고, 우리를 이끌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영원히 연결된 ‘끈’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새해에도 주님이 주신 생명의 끈을 점검해 보자. 이 ‘끈’은 교회와 교회, 성도와 교회, 목회자와 성도와도 공동체로 연결되었음을 명심하고, 오늘도 일상에서 ‘생명의 끈’에 맺어있음을 기억하고
“주의 발자취를 따라가자 기쁜 마음으로, 찬송하며 즐겁게”를 부르며, 예수를 자랑하며 살아가자(찬 56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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