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정세가 어지럽다. 세상은 평화를 원하지만, 전쟁의 소문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일어난다. 중동의 화약고라고 일컫는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간 서로 국가의 안전을 수호한다는 명목하에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주고받는 상황을 지켜보노라니 너무나 안타깝다. 또 북한은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을 계속해서 개발하고 있고, 핵 지위국을 확보하려는 북한과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을 중심으로 지금도 유엔안보리는 불꽃 튀는 전쟁을 하고 있다. 신앙생활 환경도 마찬가지다. 순간순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다짐하고 외치면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주변에는 자유주의, 개인주의, 개성주의, 물질주의가 성도들을 말씀 중심에서 벗어나 쾌락주의, 편리주의로 살아가도록 유혹하고 있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의 선한 사투를 벌이는 성도들에게 박수와 지지와 격려를 보낸다.
몇 년 전에 천만 관객을 돌파한 ‘택시 운전사’ 영화를 보았다. 배경은 1980년 군부와 광주 시민들 간의 일어난 사건을 다루고 있다. 그동안 서로 진실 게임에서 수많은 공방전이 있었지만 거두절미하고 1980년 5월 18일은 우리 민족사에 큰 상처를 주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인 택시 운전사와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푸른 눈을 통해 진실이 무엇인가를 알려주기 위해 실화를 바탕으로 장훈 감독이 만든 영화다.
주인공인 택시 운전사는 아내를 잃고 딸과 함께 셋방살이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하루는 광주에 다녀오면 큰돈을 주겠다는 말에 그는 독일 기자를 태우고 처음에는 돈 벌 욕심으로 신나고 재미있게 광주로 내려간다. 하지만 광주로 가는 길은 만만치 않았다. 그는 광주로 내려가면서 예기치 않게 보지 말아야 할 부분을 목격하면서 힘들게 광주로 진입했다. 그곳 현실은 녹록하지 않았다.
택시 운전사와 독일 기자는 크고 작은 일에 갈등을 느끼면서 분노와 억울함이 폭발한다. 택시 운전사는 끝내 자신의 자존심인 돈까지 포기하면서 서울로 도망을 치는 가운데 택시가 고장이 났다. 택시를 수리하는 가운데 광주에 대한 뉴스와 신문,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를 듣게 된다. 자신이 광주에서 직접 목격한 것과는 달리 진실이 아닌 가짜 소식에 그만 공분이 생겼다.
그는 “그곳에 태워야 할 손님이 있어 다시 가야 한다.”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광주로 진입한다. 우여곡절 끝에 광주에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와 극적으로 재회를 한다. 이들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사선을 뚫고 서울공항에 안전하게 도착한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에 대한 진심을 가슴에 담고 찐한 포옹을 하며 기약 없이 헤어진다. 일본으로 돌아간 독일 기자는 자신이 보고, 듣고, 찍은 증언 자료들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소개했을 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일상으로 돌아온 택시 운전사는 전과 동일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며 소시민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이 영화 주인공인 택시 운전사는 처음에는 단순하게 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긍휼’,‘사랑’,‘진실’,‘양심’,‘자유’,‘사명’,‘ 정’을 깨닫고 진실을 위한 밝히기 위한 사명자로 나서는 그의 삶에서 찐한 감동을 받았다.
영화 ‘택시 운전사’의 모습에서 하나님 나라 영적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다. 하나님 나라의 제사장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러한 질문에 한 청년이 생각이 났다. 자유를 떠나 불구덩이로 들어간 디트리히 본회퍼(독일어: Dietrich Bonhoeffer, 1906년 2월 4일~1945년 4월 9일) 목사이다. 그는 1939년 미국 뉴욕항을 떠나 독일로 가는 배에 탔다. 그가 젊은 나이에 독일로 가려는 데에는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 당시 독일은 히틀러 정권에 의해 세계 대전에 광분해 있었으며, 유대인 대학살과 같은 인류 역사상 가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현실 가운데서도 독일 교회는 이런 비인간적인 만행을 바라보면서도 침묵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히틀러 만세’를 외치고 있었다. 그러다 본회퍼는 이러한 만행에 침묵하는 독일 교회의 영적인 잠을 깨우고, 하나님의 공의를 선포하고자 위험을 무릅쓰고 유유히 조국 독일로 향했다.
그가 조국으로 가는 그날 그의 일기장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나의 장래에 대하여 그동안 파도처럼 일던, 몹시도 불안해하던 마음이 이제 잔잔해졌다. 이는 내가 갈 길을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로 돌아간 그는 나치의 학정에 침묵만 지키고 있던 교회를 일깨우고 히틀러의 죄상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바르멘 선언’을 선포하였다. 그 결과 그는 결국 투옥되었다. 그의 탁월한 학문적 자질을 알고 있던 미국교회는 그를 구출하려고 백방으로 갖은 애를 썼다. 그러나 본회퍼는 유니온 신학교 교장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띄웠다. “나는 내가 독일에 돌아온 것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고 힘차게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는 결국 39세의 젊은 나이에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러나 본회퍼는 주 안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었고, 믿음으로 승리한 목사였다. 그는 자기가 걸어갈 방향과 목표와 할 일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무한한 긍지를 보여 주며 살아간 믿음의 거장이었다.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택시 운전사’ 한 장면이 떠오른다. 택시 운전사가 이동할 때 조용필의 ‘단발머리’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 소녀가 보고 싶을까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에 되살아나 네 내 마음 외로워질 때면 그날을 생각하고 그날이 그리워질 때면 꿈길을 헤매는데 음 못 잊을 그리움 남기고 그 소녀 데려간 세월이 미워라 그 언젠가 나를 위해 꽃다발을 전해주던 그 소녀 오늘따라 왜 이렇게 그 소녀가 보고 싶을까 비에 젖은 풀잎처럼 단발머리 곱게 빗은 그 소녀 반짝이는 눈망울이 내 마음에 되살아나네.” 이 노랫말처럼 소망을 가진 소녀가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그날이 오길 소망해 본다.
또한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 노래 가사가 생각이 났다. ‘우리가 살고 있는 하늘엔 조각구름이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어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언제나 행복하고 자유롭고 풍요로운 세상’을 추구하면서 살아간다. 그러기에 세상이 주는 안락함에만 머물지 말고, 우리의 삶의 영역인 모든 곳에 영적 제사장의 사명으로 ‘진실’과 ‘공의’를 바로 세워가며, 또 하나님 나라의 의를 드러내며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길 간절히 소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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